[커버스토리]세밑 베스트 여행지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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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문다. 시간의 흐름에 불과하지만, 이맘때면 언제나 그 흐름을 붙잡고 싶다.

아쉬움 때문일까. 이럴 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설렘을 느끼게 한다. 연말이 되면 한사코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림 같은 CF 촬영 장소를 찾아다니는 ‘로케이션 매니저’ 이성범 씨가 겨울에 가면 더욱 좋은 여행지를 추천했다.

연인의 손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새하얀 눈길, 겨울의 고요를 품은 푸른 대나무밭, 새해의 깨어남을 알리는 조용한 일출 등. 가족, 연인과의 여행은 물론이고 나를 찾는 ‘홀로 여행’에도 안성맞춤이다.》

▼경기 화성 어섬과 궁평 낙조▼

먼 여행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어섬’을 소개하고 싶다.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요금소를 나와 우회전한 뒤 20분쯤 달리면 사강이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끝에서 우회전해 얕은 언덕을 넘으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회전해 끝까지 가면 어섬이다. 어섬에는 탁트인 벌판과 어른 키만큼 자란 갈대가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경비행기의 체험지로도 유명하다. 시화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펜션들이 있다. 주변에 가볼 곳이 많은데 제부도 한 곳만 더 추가해도 겨울철 하루 여행 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다. 펜션 해피하우스 031-357-3908, 경비행기 체험 예모항공 031-356-1025

사강에서 제부도로 가다 보면 궁평리가 나온다. 궁평리는 화성 팔경 중 하나인 궁평 낙조로 유명하다. 궁평항은 또 조개구이와 삼세기(삼식이)회가 맛있다. 두 개의 방파제 중 오른쪽 방파제 중간에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탁 트인 바다와 궁평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궁평리 낙조는 장관 그 자체다. 바다 위의 하늘이 푸른색에서 보라색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붉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울부짖음과 바람소리가 곧 찾아오는 어둠을 아쉬워한다.

제부도에 들어서면 파도가 만든 매바위나 섬 중간의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제부도 관리소 031-369-1673

제부도에서 대부도 표지판을 보고 15분쯤 달리면 시화방조제가 나온다. 방조제 옆에서 누에섬 등대 전망대로 가는 배를 탈 수 있고 썰물 때는 걸어서도 갈 수 있다. 누에섬 등대 관리자 010-3038-2331

▼강원 평창 양떼 목장과 강릉 부연동▼

일출 하면 바닷가를 떠올리지만 눈덮인 목장에서 바라보는 새해의 일출은 색다를 것이다. 양떼 목장이 그런 곳이다. 양치기 소년이 “아저씨, 양들이 왜 침묵하는지 알아요”라고 묻는 LG 싸이언 CF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양떼 목장과 용평스키장을 한 코스로 꾸밀 수 있다. 양떼 목장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뒤에 있다.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나와 용평리조트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대관령 옛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3km쯤 가면 된다. 일출을 본 뒤 횡계의 명물 오징어불고기에 뜨거운 황태국을 곁들이면 그만이다.양떼 목장 033-335-1966

부연동 마을은 오지. 조용하고 사색적인 겨울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워낙 오지여서 마을 사람들이 6·25전쟁이 난 것도 몰랐다. 마을 중간쯤 부연분교가 있는데 ‘Speed 010 산골분교’ 편을 촬영했던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에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오대산 월정사 방향으로 간다. 오대산휴게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부연동 입구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보인다. 거기서 6km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한다. 눈이 오면 위험하니 미리 확인해야 한다. 원래 마을 이름은 가마솥을 닮은 깊은 연못이 있다고 해서 ‘가마소’다. 통나무 펜션에서 오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민박을 하면 더 좋다. 산간 오지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보내는 겨울밤의 정취가 그만이다. 가마소 펜션 033-661-9233

▼전북 부안 채석강 모항 곰소항▼

변산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항에서 만나는 노을은 겨울 여행의 백미다. 모항으로 가기 전 채석강에 들르자.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나들목에서 변산 표지판을 보고 가면 된다. 채석강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 6억여 년 전부터 퇴적된 겹겹의 세월이 신비를 자아낸다. 20세기 마지막 햇빛으로 경북 구룡포의 해맞이 공원에 보관된 빛은 1999년 12월 31일 이곳에서 채화한 것이다.

채석강 옆 격포를 지나 가파른 해안도로를 오르면 자그마한 해변이 눈에 들어오고 모항 표지판이 보인다. 모항 해변으로 내려서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다. 목책에 둘러싸인 해변과 절벽 중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나폴리에 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언덕 너머 포구에는 낡은 목선들이 떠 있고 바다와 하늘은 서로 구분하지 않는다. 시인 안도현은 시 ‘모항 가는 길’에서 ‘모항을 아는 것은/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모항에 있는 모텔이나 펜션에서 하룻밤을 지내도 좋다.

모항 주변에는 곰소항와 곰소염전이 있다. 곰소항은 갈매기 천지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는다. 곰소항의 바다는 푸르지 않고 음울한 탁류다. 푸른 하늘도 곰소의 바다 위에선 흑백사진이 되어 버린다. 변산반도국립공원관리사무소 063-584-7807, 모항 레져(모텔) 063-584-8867∼8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과 대나무골 공원▼

고속도로의 담양 요금소를 나와 2km쯤 가면 국도 24호선(담양-순창) 도로변에 키다리 메타세쿼이아 13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1972년 조성된 가로수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다. 이 길에서는 누구나 낭만주의자가 된다. 여름에도 좋지만, 겨울 눈 오는 날에 가면 하얀 배경 위에 메타세쿼이아가 추억 속의 연인처럼 서서히 다가온다.

이 길을 따라 6km쯤 더 가면 대나무골 테마공원에 이른다. 대나무가 눈 속에서 푸르름을 뽐내며 사르륵 사르륵 이야기를 청한다. 담양에서 만나는 대나무 공예품은 중국산 가공품이 많다. 농가에서 이익이 나지 않자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펜션 등을 짓기 때문이다. 테마공원 www.bamboopark.co.kr, 061-383-9291

내친 김에 조선시대 정원인 소쇄원과 명옥헌에도 가보자. 공원을 나와 광주댐 쪽으로 가면 소쇄원이 나온다. 입구에는 대숲이 있고 정원 중간에 물길이 있다. 정원이 얼마나 소중한 문화유산인지 짐작할 수 있다. 소쇄원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명옥헌은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한 정원이다. 물소리가 옥이 굴러가는 소리같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백일홍이 피는 배롱나무와 물이 조화를 이루는 예쁜 정원이다. 소쇄원 www.soswaewon.org

▼부산 이기대공원과 창원 철새도래지▼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등 부산에는 관광 명소들이 많지만 손때가 덜 묻은 곳을 찾는다면 ‘이기대(二妓臺)’가 좋다. 남구 용호동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을 지나 산길을 넘어가면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솔밭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구릉에 내려서면 바다가 펼쳐진다. 이기대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승전 잔치를 벌이는 왜장을 두 기생이 끌어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고 하나 분명하지 않다. 이기대는 한동안 군사보호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기대에 서면 광안리와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광안대교와 수영만, 해운대 동백섬까지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는 달맞이 축제가 벌어지는데 이기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에 뜬 달’이 절경 중 절경. 이기대 공원 관리소 051-607-4538

경남 창원시 동읍에 있는 철새 도래지인 주남저수지에도 들러보자. 구마고속도로 동창원 나들목에서 동읍 방향으로 가면 된다.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을 이룬다. 최근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황조롱이 등이 촬영돼 화제를 낳았다. 주남저수지는 용산(주남) 산남 동판 등 세 곳으로 구성돼 있는데 동판저수지를 추천한다. 주남저수지 www.junam.co.kr


글·사진=이성범 로케이션 매니저 puzzle2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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