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종능]복제된 청자는 ‘예술’이 아니다

  • 입력 2005년 12월 2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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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어느 시점에서 무엇엔가 매혹되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혹은 어떤 소리이거나 코끝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일 수도 있다.

내 정신을 매혹시켰던 것은 어린 시절 만난 하나의 선(線)이었다. 나는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푸른 하늘을 베개 삼아 허공을 가르는 계림의 이끼 낀 기와지붕의 선,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은은한 에밀레 종소리…. 자연박물관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런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흙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유년시절부터 유난히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을뿐더러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을 꽤나 싫어했다.

본격적으로 흙 수업을 시작했을 때 선조들이 만든 청자나 백자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가마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보았을 때 마냥 신기하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20여 년 전 대부분의 요장에서는 청자 백자 분청을 만들고 있었다. 도자기 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자 만듭니까, 백자 만듭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 처음 인사였다. 박물관에 있는 청자나 백자를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작품의 높은 수준과 완성도를 인정받는 척도가 되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나는 선조들의 우수한 예술성 위에 나만의 미적 감각을 싣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유명하고 비싸게 팔린다는 도자기에서는 왜 감흥과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머리만, 눈만 ‘말똥말똥’해질까? 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복제’에 불과하구나. 그것은 공산품이지 ‘예술품’이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가 청자 백자 분청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선조들이 당시 시대상황에 따른 ‘독창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서양인에게 자연은 정복과 이용의 대상이었다. 일본에서는 자연이 지진, 태풍, 해일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국은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네 선은 빗물이 흘러내리면서 산을 쓰다듬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들을 굽이굽이 흘러 강물을 이루면서 우리 역사를 쓰듯이 선조들의 따스한 손길이 그릇의 아름다운 선을 따라 흘렀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일부 지식인의 문화사대주의와 열등감 때문에 우수한 문화가 적절치 못한 평가를 받곤 한다.

문화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진정한 전문가가 많아야 한다. 전문가는 바른 소리를 내야 하며 무사안일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매스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특히 텔레비전의 도예 관련 방송은 이따금 재현(복제)에 무게를 싣곤 한다. 또 그릇을 깨는 일이 치열한 예술혼의 상징인 듯 묘사하는 상투적 제작 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그것이 도예의 최고봉인 것처럼….

내 눈에는 이것은 스스로 ‘예술품’이 아니라 ‘공산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자라나는 꿈 많은 아이들에게 자연 파괴, 인간성 파괴와 잘못된 도자기 지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본다.

옛날의 도공이 장인이었다면 지금의 도공은 도예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다. 자신의 도자기에 낙관을 찍는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만들면 이것은 복제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창조적 표현’에 있다. 자신의 사상에 독창성이 가미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은 결국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닮은 소박한 민족이기에, 우리 문화에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문화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이어갈 수 있다. 그것도 ‘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마이 웨이’를 열어감으로써 진정한 예술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종능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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