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학 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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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루퍼트 리드 지음·김해진 옮김/368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대기에 의한 빛의 굴절현상을 발견한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이 당대의 과학자는 어째서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동설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20세기의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에테르라는 가상물질이 우주에 가득 스며 있다고 믿게 됐을까?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바로 그 직전까지도 말이다.

토머스 쿤은 과학의 선구자들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한결같이 이상하고 혼란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했다.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면 어찌 이리도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쿤은 1947년의 어느 여름날 밤, 홀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적인 감정 이입’을 경험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섬광처럼 순식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이해하게 된 쿤은 외쳤다. “아리스토텔레스 운동론의 정합성을 찾아내는 일은 현재의 물리학적 관점에서 재단한다면 불가능하다!”

과학의 발전을 앞으로 나아가는 ‘이성의 실행’이 아니라 상이한 종교로의 ‘개종행위’ 같은 것으로 보았던 쿤(위). 그는 시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아래 왼쪽)와 뉴턴(가운데)의 이론,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맞바로 대면시키면 한쪽은 우스꽝스러워질 뿐이라고 보았다. 사진 제공 사이언스북스

그것은 쿤의 오랜 지적 탐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거의 과학은 전적으로 그 역사적 맥락 안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과학사상은 그것을 수용하고 누리는 사람들에겐 전적으로 이해 가능하고 수긍이 가는 것이었다. “현재의 선입견을 과거에 투사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단지 현재로 건너오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쿤은 과학의 변화를 ‘이성의 실행’이라기보다는 ‘개종(改宗) 행위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전 시대가 ‘더 나은’ 방향으로, 즉 현재의 상황으로 ‘올바르게’ 진행되어 왔다는 진보의 개념을 거부했다. “인류학에서 힘들게 배웠듯이, 그 어느 때도 ‘미개한’ 시대는 없었다.”

1962년 출간된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긋는다. 그가 제시한 ‘패러다임 이동’과 ‘과학혁명’의 개념은 자연과학은 물론 철학 사회과학 역사학 페미니즘 신학에 이르기까지 그 학문적 토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쿤의 견해는 격렬한 반대자를 낳는다. 하버드대 물리학부 수석졸업자이자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쿤의 주장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종말론에 가까운 지적 협박으로까지 비쳤다. 그러나 쿤에 대한 비판은 상당 부분 그의 저작에 대한 오독에 기인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영국의 인문학자인 저자들은 쿤의 저작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 쿤이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면밀히 짚어가며 쿤에 대한 학문적 오해를 교정하고자 한다. 쿤의 과학철학은 본질적으로 과학을 절대적 진리의 담지자라는 영웅주의적 미망에서 구해 내려는 ‘치유적’인 것이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960년대에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쿤. 20세기의 모든 영역에 자신의 지적 그림자를 드리웠던 철학자는 숱한 오해와 편견을 낳았다. 쿤의 제자인 헤이블론은 그 복잡다단한 정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쿤은 인상주의 화가처럼 과학을 묘사했다. 관람객이 멀리서 보면 그가 제시한 과학은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영감이 넘친다. 그러나 역사학자나 철학자들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어설프고 혼란스러우며 의문투성이였다….”

원제 ‘KUHN: Philosopher of Scientific Revolution’(2005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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