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 실천하던 농촌교회 전생수 목사 육신마저 주고 떠나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코멘트
전생수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예수의 삶에 일치시키려 했다. 가난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온 전 목사는 육신마저 남에게 바치고 떠났다. 사진 제공 사진작가 임종선 씨
전생수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예수의 삶에 일치시키려 했다. 가난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온 전 목사는 육신마저 남에게 바치고 떠났다. 사진 제공 사진작가 임종선 씨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온 한 농촌교회 목사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교회 강단에서 철야기도 중 뇌중풍으로 쓰러진 그는 장기를 기증해 7명에게 새 생명의 빛을 선사하고 세상을 떠났다.

충북 충주시 추평리 산골마을에 있는 전형적 농촌교회인 추평교회 담임 전생수 목사는 14일 밤 늘 해 오던 대로 교회 강단의 의자에 앉아 기도하던 중 뇌중풍으로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충주시 건국대병원과 강원 원주시 연세대기독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19일 향년 52세로 소천하고 말았다. 그의 각막, 신장, 간 등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됐다. 나머지 그의 시신은 화장돼 고향인 강원 인제군의 산과 들판에 뿌려졌다.

21일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유족이 공개한 전 목사의 유서는 20여 년 동안 농촌 목회를 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그의 무소유의 삶의 정신을 잘 보여 준다. 평소 교인들에게 항상 죽음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해 온 그는 스스로도 지난해 2월 25일 사순절 첫날에 이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대로 장례식은 부인 박영자(50) 씨와 1남 1녀, 가깝게 지내던 목사 및 교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례에 참석한 허태수 목사는 “자연이나 여러 상황에조차 빚졌다고 생각하며 살던 분이었는데 끝까지 나누면서 가셨다”고 추모했다.

한 교인은 교회 카페(cafe.daum.net/sanheaddlehead)에 올린 글에서 “한없이 넓은 몸과 마음을 가지셨고 많은 이에게 사랑을 베푸셨던 목사님을 하나님이 너무 일찍 데려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목사는 강원 강릉시 외곽의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1년 전 추평교회로 목회지를 옮겼다. 8개 마을에 노인 중심으로 주민 50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그는 교인 40여 명으로 소박하지만 알찬 교회를 일궈 나갔다. 그는 평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는 신앙으로 자신의 삶과 하나님의 진리를 일치시켜 나가려 했다고 교인들은 전한다. 부인 박 씨는 “목사님은 평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나그네의 삶을 살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다른 농촌교회처럼 추평교회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으나 박 씨가 면소재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목회를 뒷받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전 목사의 유지를 받들어 이 같은 일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으나 교계 내에서는 그를 추모하고 유족을 도우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