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9>무대 위의 임신부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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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기간에는 절대 임신하지 않겠다.”

8개월간 장기 공연하는 뮤지컬 ‘아이다’의 여주인공으로 뽑힌 문혜영은 캐스팅 직후 제작사와 한 가지 약속을 해야만 했다. 여주인공이 임신할 경우 장기 공연에 차질이 생기므로 제작사가 신혼인 그에게 ‘임신 불가’를 캐스팅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

실제로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캐스팅됐던 방주란은 예상보다 배가 빨리 불러 오는 바람에 관객이 눈치 챌 정도가 되자 결국 공연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탭댄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했던 이성옥은 유난히 마른 몸매(키 171cm, 몸무게 50kg) 덕분에 관객 모르게 임신 7개월까지 무대에 섰던 경우.

“임신은 초기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내 역은 대타가 없었기 때문에 무대에 서야만 했다. 행여 탭댄스가 아기한테 무리가 될까 싶어 힘든 안무는 빼고 꼭 해야 하는 부분만 이를 악물고 했다. 엄마가 배우인 걸 알았는지 배 속에서 잘 버텨 준 아기가 고맙다.”

임신 6, 7개월에도 무대에 서는 뮤지컬배우나 연극배우와 달리 발레리나는 임신 중엔 무대에 서기 힘들다. 또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출산 후 무대에 서는 ‘엄마 발레리나’도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무용수의 몸놀림은 허리의 유연성이 좌우하는데 임신을 하면 뒤로 몸을 젖히는 연습을 못하니 허리와 등이 뻣뻣해진다. 그래서 출산 후 몸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한동안 굉장히 우울했다.”(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임혜경)

클래식 연주자의 경우 임신을 하면 손이 붓고 숨이 가빠지다 보니, 손가락으로 현을 누르고 활을 켜는 현악기나 호흡 조절이 중요한 관악기 연주자들은 크고 작은 불편을 겪는다. 그중 가장 애로 사항이 많은 악기는 트럼펫.

“금관악기는 목관악기보다 숨을 더 많이 참아야 한다. 게다가 금관악기 중에서도 트럼펫은 고음을 내기 위해 복근에 힘을 굉장히 많이 줘야 한다. 배에 힘주는 것도 그렇지만 숨을 오래 참으면 행여 아기에게 산소 전달이 잘 안 되지 않을까 걱정돼서 배가 불러 오기 시작한 후부턴 연주를 중단했다.”(KBS교향악단 트럼펫 주자 임시원)

음악계에 떠도는 출산 관련 속설 중 하나인 ‘트럼펫 부는 여자들은 순산한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이에 대해 임 씨는 “근거 있는 말 같다. 트럼펫 불 때의 호흡법은 출산 때 하는 라마즈 호흡법과 거의 같다. 악기를 열심히 분 덕분인지 나도 세 아이를 모두 2시간 안에 순산했다”고 말했다.

무대 위의 모든 엄마들에게, 그리고 배 속의 아기들에게 박수를….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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