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僞作미술품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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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화가도 자기가 그린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작고한 화가의 그림은 감정위원들이 감정을 하지만 생존 화가의 작품은 본인에게 확인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가로 인정받는 L 씨는 자신의 대표작 한 점을 앞에 놓고 구석구석을 짚으며 위작(僞作)이라고 역정을 낸 일이 있다. 나중에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그 작품을 그릴 때 옆에서 지켜봤다”고 증언하지 않았더라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그림이 ‘위작’으로 사장될 뻔했다.

▷자신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믿을 수 없어 화상(畵商)이나 소장자의 감정 요청을 거절하는 원로화가도 있다. 최고의 전문가들조차 정교하게 모사(模寫)된 위작을 진품으로 잘못 판정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미술품 감정은 ‘진실 규명’이 아니라 ‘추정’일 뿐이라고도 한다. ‘짝퉁’을 진짜라고 판정하는 경우의 폐해보다 진품을 가짜라고 판정했을 때의 폐해가 더 크다는 관점도 있다. 위대한 화가의 진품을 ‘가짜’라고 판정함으로써 미술사에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섭과 박수근은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은 부산 피란 시절 돈이 없어 그림 재료를 못 사고 다방에 앉아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새겼다. 박수근은 미군부대 PX에서 1달러짜리 손수건에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5달러에 팔아 생계를 꾸렸다. 두 화가는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으며 위작이 가장 많이 나도는 작가가 됐다.

▷위작 시비가 벌어진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대해 검찰의 의뢰를 받은 미술전문가 14명이 ‘위작’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확신이 없어 의견 진술을 기피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이번 기회에 미술시장의 사기(詐欺) 행위와 유통 난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에 “이중섭의 비참한 죽음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을 유족들이 위작을 만들었겠느냐”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검찰의 수사결론이 주목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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