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일기’ 충무공이 안썼다… 작가 송우혜씨 밝혀

  • 입력 2005년 4월 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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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현충사 유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함경도일기’. 이는 학봉 김성일의 ‘북정일록’ 일부를 누군가 난중일기 필체로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제공 송우혜 씨
충남 아산시 현충사 유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함경도일기’. 이는 학봉 김성일의 ‘북정일록’ 일부를 누군가 난중일기 필체로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제공 송우혜 씨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1545∼1598)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 쓴 것으로 전해지는 1쪽짜리 ‘함경도일기(咸鏡道日記)’는 이순신의 일기가 아닌 것으로 5일 밝혀졌다.

또 이순신이 선조 21년(1588년) 백의종군(白衣從軍)한 것은 병졸로 강등돼서가 아니라 단순한 보직해임 상태의 장수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순신 평전’을 집필 중인 작가 송우혜(宋友惠·사진) 씨는 ‘함경도일기’는 이순신과 같은 시대의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1538∼1593)이 함경도 순무어사 시절 쓴 일기 ‘북정일록(北征日錄)’ 중 일부를 누군가 ‘난중일기’의 초서체로 베낀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문서는 1972년 발간된 ‘학봉전집(鶴峯全集)’ 내 ‘북정일록’의 507쪽 선조 13년 3월 18일치 일기와 몇 글자만 차이가 날 뿐 내용이 거의 같다.

특히 날짜 및 간지(干支)가 ‘18일 정사(十八日 丁巳)’에서 ‘8일 병술(八日 丙戌)’로 바뀌었다. 송 씨는 “이에 따라 일기가 쓰인 연도가 선조 13년(1580년)에서 선조 16년(1583년)으로 변했는데 이는 이순신이 함경도에서 근무하던 시절로 조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관군이 반란군과 전투를 벌였던 경령(慶嶺)을 지나며 당시의 전투 상황을 회고하는 내용의 이 문서는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1903∼1982)과 한문학자인 이가원(李家源·1917∼2000) 전 성균관대 교수가 1967년 이순신 친필일기로 고증했다.

그 후 서지전문가 이종학(李鍾學·1928∼2002) 씨가 1999년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기증해 현재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학봉전집’ 편찬에 참여했던 이우성(李佑成·학술원 회원)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은 두 자료를 모두 검토한 뒤 “누가 봐도 난중일기 글씨와 같아 노산도 가려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문서는 이순신을 다룬 학술서적과 문학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돼왔다. 수군(水軍) 장수로만 각인된 이순신의 육군 시절 일기인데다 내용도 전략가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서를 엄밀하게 고증한 이상훈(李相薰)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순신의 친필이 아닌 게 확실하다”며 “발견 당시에도 종가 소장품이 아니고 출처가 불명확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검증해야 할 문서였다”고 말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같은 조작을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의 친필일기라고 고증한 이은상 이가원 이종학이 모두 고인이 된데다, 입수 경위도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산도 자신의 저서 ‘태양이 비치는 길로’에서 “어쩌다 이 일기의 한 조각이 떨어져 돌아다니는 건지 유래를 알 길이 없다”고 적었을 뿐이다.

한편 송 씨는 선조 21년 1월 조선군의 여진족 시전부락 토벌전을 그린 전투그림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하단에 기록된 장수들의 명단과 직책을 검토한 결과, 당시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병졸이 아니라 장수인 ‘우화열장(右火烈將)’으로 참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그림은 선조 21년 1월 함경도 북병사(北兵使)였던 장양공 이일(李鎰)이 총대장으로 지휘한 시전부락 토벌전을 그린 채색 전투도로 현재 육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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