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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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라 루마니아여. 바로 지금이다. 지금 우리는 해낼 수 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국가의 합창(合唱)으로 뒤덮였다. 마침내 차우셰스쿠의 24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고 유서 깊은 고도(古都)는 자유에 흠뻑 젖었다.

차우셰스쿠는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나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해 폴란드와 동독, 체코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정권이 붕괴되기 전날 관제 궐기대회를 열고 있었다.

루마니아를 ‘사설(私設) 왕국’으로 만들었던 차우셰스쿠.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기도 했던 그는 김일성주석궁을 본떠 ‘인민궁전’을 건립했다. 6000여개의 방이 들어선 궁전은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큰 건축물이다.

“내일 이곳에서 연설을 하리라.” 그의 말 한마디에 지하철 공사장은 하룻밤 새 잔디밭으로 바뀌어야만 했다.

부인 엘레나도 못지않았다. 그녀는 ‘부부 세습’을 꿈꾸었다. 루마니아의 국모(國母)를 자처하며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배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보석벌레’ 엘레나. 그녀는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자 자신이 직접 발포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발악했으나 결국 그해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함께 처형되고 말았다.

드라큘라와 집시의 나라 루마니아.

슬라브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라틴의 섬.’ 동유럽 여러 국가 중에서 유일한 라틴계 민족의 나라이다.

하지(夏至)에는 여자들이 새로 짠 리넨으로 나뭇가지에 맺힌 이슬을 받아 마시는 요정(妖精)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 있다. 축제 때면 아낙네들은 모닥불을 뛰어넘으며 사랑과 청결을 노래한다. 자연과 어울려 살며 집안의 대문도 잠그지 않았던 민족.

그런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의 통치 아래 수십년간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혁명 이후에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는 국민들이 생존하는 방법을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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