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웅대한 유물에 새겨진 역사의 목소리

  • 입력 2003년 2월 27일 17시 30분


코멘트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아부심벨 신전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신전과 왕궁,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로 고대의 역사를 볼 수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아부심벨 신전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신전과 왕궁,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로 고대의 역사를 볼 수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모래더미에 묻혀 인류의 기억에서 증발되어 버린 고대 이집트 문명. 피라미드, 신전, 조상(彫像)의 형태를 띠고 있는 돌의 세계로만 남겨졌을 뿐, 오랜 세월 누구도 수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어떤 문명이 존재했는지를 해독할 수 없었다. 그림과 기호로만 남아있는 상형문자를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로 불리는 이 상형문자는 그리스어로 ‘거룩한 기록’을 뜻한다. 기원전 3200년 경부터 기원후 394년까지 3천6백여년 동안 사용되었던 고대 이집트의 공식문자로, 형상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수께끼를 풀듯이 상형문자에 매달린 모험가들과 학자들은 많았지만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발견한 사람은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이었다.

● 역사와 기록에서 사라진 이집트 문명

4세기 이후 가톨릭이 지배적이었던 비잔틴제국에서는 황제의 명령으로 이교도 신전이 폐쇄되었다. 신전의 폐쇄는 신을 숭배하는 데 필요한 언어와 문자를 알고 있는 성직자들을 흩어지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도서관에 보존하고 있던 파피루스의 문장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때가 391년.

제국주의시대 이집트의 황금보물과 아름다운 조각들은 나일강을 따라 몰려온 수많은 서구 열강들에 의해 도굴되고 훼손되었다. 영국 프랑스 프러시아의 박물관들이 별도로 이집트관을 만들 정도로 보물과 조각품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진열만 해놓았을 뿐 그 유적과 보물들이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유럽사회에 이집트 열풍이 불면서 상형문자 해독에 고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의 참여가 러시를 이뤘다. 그 중에는 천재 언어학자인 샹폴리옹도 있었다.

현존하는 파피루스에 남아있는 상형문자. 대부분 미이라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내용은 미이라의 주인공들이 사후세계에서 문제에 부딪칠 때 외는 주문이나 신들에게 바치는 서약 등을 담은 ‘사자의 서’로 이집트인들의 내세관 연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사진제공 이집트관광청

샹폴리옹은 1790년 프랑스 남부 피젝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섯 살도 되기 전에 읽고 쓰기를 마쳤고 열한 살부터 라틴, 그리스, 히브리어를 익혔던 천재였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당시 이집트 학사원 사무관이었던 장 푸리에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로제타스톤의 사본을 보게 되었다. 로제타스톤은 1799년 나폴레옹을 따라 이집트로 간 원정대가 발견한 비문으로 길이 1.25m, 너비 0.7m, 두께 0.28m인 검은 돌이었다. 그 비문엔 같은 내용의 문장이 세 가지 문자로 새겨져 있어서 당시 학자들은 이집트 상형문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문자(아랍어로 보이는 초서체 문장과 그리스어)를 통해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샹폴리옹은 사본을 보면서 ‘누가 저것들을 읽었나요?’라고 질문했지만 아무도 푼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로제타스톤은 샹폴리옹의 머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결국 1822년 수수께끼를 풀게되었다. 그때 샹폴리옹의 나이는 불과 32세였다.

오늘날 샹폴리옹의 이론을 원용해 조금씩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되고 있지만 4000년 동안 계속 변해온 상형문자의 완전한 이해는 아직도 학자들의 과제로 남아있다. 1999년에는 로제타스톤 발견 200주년을 기념해서 샹폴리옹의 고향인 프랑스 지롱드 지방과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다양한 축제와 세미나 등이 개최됐다. 당연히 이집트에서는 반환을 요구하며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 파라오 마을까지

이집트관광의 출발점인 카이로의 시가지 풍경. 고대유적과 현대적인 빌딩이 어울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사진제공 월드콤

“이 작은 세상, 위대한 카이로… 지구상에서 가장 멋지고 위대한 도시… 위대한 세계의 소우주….” 카이로를 예찬한 윌리엄 리스고우의 시 구절이다.

이집트 관광의 출발점인 카이로는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5000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도시인 만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도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몇 군데로 집약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이다. 2개층의 아담한 규모이지만 100여개 이상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층은 시대별로 전시가 되어 있고 2층엔 파피루스와 관 등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통로에도 동상 등의 전시물을 늘어놓아 유럽식 박물관을 보던 사람들에겐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소장품이 워낙 많아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마치 거대한 돌과 조각상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창고를 연상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1∼2시간이면 중요 전시실을 중심으로 일반 코스를 돌아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역시 투탕카멘의 보물이 전시된 곳. 1994년에 개방한 미라실을 비롯, 고대 이집트 왕의 유물들을 전시해놓아 웅장함과 화려함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물론 대부분 왕의 유물과 보물엔 샹폴리옹의 해석을 좇아 연대와 특징 사용처 등이 설명되어 있고 전시실 한 켠에서는 상형문자로 쓰인 다양한 고문서 파피루스와 비문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대영박물관에 남아있는 로제타스톤을 비롯, 다른 나라에 흩어져 있는 막대한 유물들을 제외한 물량이지만 이 박물관을 찬찬히 돌아보는 데만 한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 크기와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000년전의 삶 완벽 재현 ‘파라오 마을'▼

파라오마을의 밀랍인형들. 모세가 강에서 건져 올려지는 장면을 재현했다.사진제공 이집트관광청

고대 상형문자는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도처에 흩어져 있는 신전이나 왕궁의 벽화, 부조, 오벨리스크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를 파피루스에 그림과 함께 그려넣어 읽었다. 파피루스는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자라는 높이 1∼2m의 식물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식물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뒤, 엮어 말려서 다시 매끄럽게 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현재의 제지법이 유럽에 전파되기 전에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많이 재배되었고 13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내에서 고대의 방식으로 파피루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로는 ‘파피루스 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카이로 시내를 흐르는 나일 강의 가운데에는 두 개의 커다란 섬이 있다. 하나는 북쪽 돌출부에 르 메르디앙 호텔이 있는 로다섬이고 다른 하나는 로다 섬 북쪽에 있는 게지라 섬이다. 게지라는 아랍어로 섬을 의미한다. 사막이란 뜻을 갖고 있는 사하라처럼 중첩적으로 쓰여졌다. 아무튼 이 섬은 신시가지와 세 개의 다리로 연결된다.

파피루스 박물관은 그 중 가라아 다리를 건너 도키 지구로 들어가면 접근할 수 있다. 파피루스 박물관은 라가브 박사가 창설한 곳으로 절벽에 묶여있는 배를 박물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라가브 박사는 고대의 방식으로 파피루스를 재현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1층에서는 파피루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공정을 실제로 보여주고 2층에서는 파피루스에 독특한 그림이 그려진 것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샹폴리옹이 해독했던 다양한 스타일의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새겨진 질좋은 파피루스를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어서 관광객들에겐 인기있는 장소이다.

파피루스 박물관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카이로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파라오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곳 역시 라가브 박사가 만들었다. 방문객들에게 시간을 거슬러 3000∼ 4000년 전의 고대 이집트 마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라가브 박사는 전 세계에서 이집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질의서를 보냈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의상과 건축구조, 다른 소품들을 완벽히 재현해낼 수 있었다. 또 마을 주변에 약 5000그루의 나무를 심어 현대적인 카이로 시내 풍경이 방문객의 시선을 방해하는 것을 막았다. 실제로 이 마을에선 당시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전원풍경에서 서민 생활, 귀족 생활, 그리고 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대 이집트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민속촌 같은 느낌의 이 마을에선 작은 증기선을 타고 파피루스가 무성한 섬으로 이동해서 고대의 방식으로 경작하는 농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또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을 모방한 신전과 고급 주택, 서민 주택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신전의 꼭대기층에 올라가면 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마을의 금은 세공 상점에서 파라오의 이름표인 카르투시에 손님의 이름을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새겨주기 때문에 재미있는 여행 기록을 얻을 수 있다.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이집트의 카이로까지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경유하는

항공편이 마련되어 있다.대한항공(02-2656-2000)의 경우, 매주 2회(월, 금) 출발편이 있으며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11시간,

두바이 체류시간은 1시간 30분, 다시 카이로까지는 3시간 50분으로 전부 16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2. 기타 정보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 카메라나 비디오 촬영을 희망하면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또 미라실 견학도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연중무휴지만 금요일엔 개관

시간이 다르다. 파피루스 박물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관하고 입장료 없이연중무휴로 운영된다. 파라오 마을

(www.touregypt.net/village)은 개장시간이 오전 9시부터 겨울엔 오후 4시,

여름엔 오후 9시까지이다. 이집트 여행에

관한 일반정보는 이집트 관광청

(www.visitegypt.co.kr, 02-795-0282)에서 얻을 수 있다.

이정현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