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문열'우리들의 …'美 출간 '홍보 투어' 다녀와서 …

  • 입력 2001년 4월 30일 18시 47분


◇큰 걸음 향한 작은 첫발

이번 미국방문은 크게 세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미국 독자들과의 접촉이고, 다음은 한국문학의 미국 진출에 대한 재미교포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새로운 번역자원의 발굴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목적은 출발 전 이미 무망(無望)한 것으로 제쳐져 버렸다. 미국 현지 유명 서점에서의 사인회가 대부분 기한이 촉박함을 이유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내 소설로 만든 영화 상영회나 강연회로도 미국인과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반드시 독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한국문학 진출 가능성 타진

한국 문학의 미국 진출에 대한 교포들의 주의 환기는 출발이 괜찮았다. 시카고의 한인회관을 가득 메운 교포들이며, 사인회에서는 준비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역판(英譯版)이 동이 나 재 주문을 해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인근 신시내티에 거주하는 이들을 합쳐도 교민이 3만 명 남짓이라는 데이튼 오하이오에서도 내 영역판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고, 뉴욕 ‘뉴 스쿨’ 대에서 있었던 영화 상영회에 이은 사인회에서는 적지 않은 미국 독자까지 가세하여 나를 감격하게 했다. 워싱턴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포가 가장 많다는 도시, 공식적인 파악으로도 60만 명에 가깝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낭패에 가까운 차질을 맛보았다. 그 무슨 사정이 있었던지 모인 청중은 내가 방문한 여섯 도시 중 가장 적었고, 주최측의 미비로 영역판 사인회는 아예 이뤄지지도 않았다.

마지막 유능한 번역자원의 발굴은 내 에이전시(출판대리인)인 와일리 사(社)의 암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스물 세 살의 미국인 대학원생이 번역하여 크게 성공한 일본작가 무라야마 하루키의 어떤 작품을 예로 들면서, 내 다음 번역도 미국 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위과정 중인 미국인 학생들 중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번역을 작가에 대한 특별한 호의나 시혜(施惠)쯤으로 여기는 한국의 번역가들에게 익숙해 있는 내게는 신선하게 들리는 제안이었다. 거기에다 마침 이번 여행에는 미국 대학의 한국어과를 상대로 한 강연 계획이 여럿 있어, 나는 그걸 번역자원 발굴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처음 방문한 시키고대의 한국학과는 이제 한창 자리를 잡아가는 인상이었으나, 문학 쪽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라이트대는 한국학과가 아예 없었고, 콜럼비아대는 한국학과가 있어도 문학 전공자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내 내심을 한번 내비쳐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네 번째로 찾아갔던 하버드대였다.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 맥켄 교수를 비롯해 내가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인지 한국학과는 활기를 띠고 있는 듯했다. 문학 전공자가 다수인데다 무엇보다도 내 논의를 진지하게 검토해 주었다. 피터 리 교수가 지도하는 UCLA의 한국학과도 자원은 하버드대에 못지 않아 보였다.

▽유능한 번역자원 발굴 중요

전체적으로 공연히 분주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여행처럼 보이기도 하였지만 더러는 위로도 있었다. 어떤 형태로 신문에 표현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뉴욕타임스’는 내 소설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LA 타임스’와는 우호적인 인터뷰를 했으며, AP 통신도 귀국 후 보충자료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할 만큼 흥미를 나타냈다.

이제 첫술이라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지만 ‘영웅시대’ 서문에 쓴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았으리. 우리의 출발은 그것을 위해 있었으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