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담배이야기'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45분


◇ 담배이야기 / 김정화 지음 / 320쪽 1만3000원 지호

사물을 이해하는데 두 단계의 문이 있다. 첫 번째는 물론 우리가 경험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상식의 문. 거기서는 고양이를 삶아먹으면 관절에 좋다는 식의 민간요법도 버젓이 지식의 하나로 통용된다. 그러나 인식의 두 번째 관문, 이른바 전문지식의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 아연 세상은 까마득한 심연으로 돌변해 ‘바닷가에서 몇줌 모래알이나 만져본’ 어린아이의 심경을 느끼게 된다. 그런 체험은 과연 학자들만의 몫일까?

“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하는 반문이 교양이 되고 있는 세상에 담배 교양서가 나왔다. 담배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으로 20여년간 일한 이력의 저자이니 지식의 신뢰성은 의심할 바 없을 듯하고, 무엇보다 방대한 인문적 소양을 밑천으로 역사, 문학, 풍속학의 전적들을 넘나들며 펼쳐나간 구수한 필치는 식후 담배맛 못지 않다. 담배라는 짐짓 ‘하찮은’ 소재 하나로 장장 300여쪽을 채워나간 이 책을 한달음에 다 읽고 나니 갑자기 담배지식으로 터질 듯 빵빵해진 전두엽이 후두엽에게 묻는다. 근데 그런 건 알아서 뭐 할라꼬?

저자의 말인즉 이렇다. 인류의 30% 이상이 해로운 줄 알면서도 흡연을 즐기고 있는 마당에 제대로 정체를 알고 피울 일이요, 금연운동가들은 헛다리 짚지말고 공격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시라.

내용은, 약초로 시작해 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던 콜럼버스 이래의 초기 세계 전파과정을 거쳐 유럽의 서세동진의 물결을 타고 1600년대 초반경 ‘담파고’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내력으로 이어진다. 조선조의 담배는 장유유서도 남존여비도 없었던지 아버지 고종과 맞담배를 즐기며 국사를 논하던 아들 순종이 부왕의 이마에 화상을 입혔다나. 국모 명성황후도 물부리에 권련을 꼽아 즐기셔서 담배 하인을 일약 요직에 중용하셨다는 이야기. 학술의 사이사이로 그러한 야담과 실화도 자욱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내게는 식물학적으로 담배를 설명한 제 3장과 더불어 담배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벗겨나간 나머지 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전혀 모르던 내용이어서였다. 전문가들은 담배의 맛을 향미, 끽미, 완화성, 조화미, 뒷맛, 중후한 맛 등으로 구분해 판단한다는 걸 들어보셨는지. 건강과 관련한 각종 연구들에 어떤 허실이 있는지도 또한. 저자는 자신이 흡연권 주창자가 아니며 객관적 사실 설명자일 뿐이라고 극구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금연운동가들이 들고 일어섬 직한 내용도 적지 않다.

그나저나 바닷가 모래알을 한 줌 더 만진 뒤끝으로 담배맛이 한층 좋아졌으니 저자를 원망해야 할까 딜레탕티즘의 포만감으로 위안을 삼을까.

김갑수(시인·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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