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박은정 등 참석 대법 공청회
“입법부가 사법부 위에 있을순 없어”
“내란 재판부는 설치 자체가 문제”
대법관 증원엔 공감… 규모 놓고 이견
법원행정처와 법률신문 공동 주최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마지막 날 토론회에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선수 전 대법관,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조재연 전 대법관(왼쪽부터)이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뉴시스
“폭정이 행해질 때 사법이 이를 견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인간에 의한 오류(휴먼 에러)가 있다고 시스템을 고쳐선 안 된다.”
11일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법률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사법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 드라이브’는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진보계 인사를 비롯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들도 사법개혁 신중론을 펼쳤다. 위헌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대해서는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 “사법개혁, 사법통제인지 헷갈려”
이날 문 전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이 하나도 선고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휴먼 에러와 시스템 에러가 섞여 있는 상태에서는 제도 개선이 제대로 논의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내란 사건 선고가 끝난 후에 제도 개선을 차분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사법개혁에 찬성한다. 다만 민주당이 제시한 법안들이 사법개혁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라며 “분노는 사법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으나 내용이 될 수는 없다”고도 지적했다. 내용을 보다 치밀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사법부가 사법 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사법개혁인지 사법통제인지 헷갈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법부 위에 있을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민주당이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법률신문 편집인 차병직 변호사는 “법안의 수정 보완이 문제가 아니라 설치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고, 박 전 위원장도 “민주당의 안은 구체적 시행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과 경고성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오는 특정 판사가 사건을 담당한다면 재판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겠나.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해도 법 앞의 평등, 정해진 절차에 의한 사법이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재연 전 대법관은 “비상계엄 관련한 사건 처리에 대해 법원이 일부러 사건을 지연하는 건 아니다. 형사재판이 공판 중심주의로 변화해 심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 왜곡죄에 대해서도 토론자들은 “정치 형법이 하나 더 탄생하는 것”, “법의 성격상 조문이 모호할 수밖에 없어 역으로 법원의 재량을 키워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대법관 증원 규모엔 “12명 vs 8명 vs 4명” 이견
대법관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는 참석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선수 전 대법관은 “대법관 12명 증원안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대법관 증원 시 이재명 대통령이 22명의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는 대법관 증원에 따른 평균적인 수치다. 어떤 대통령은 30여 명, 어떤 대통령은 10여 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면 심각한 불균형으로 오히려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 전 권한대행은 대법관 8명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상고심사부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증원 시기는 총선 후로 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 전 대법관은 “단기간 대규모 증원은 전원합의체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소부 1개 규모인 4명을 늘려야 한다고 했고, 박 전 위원장은 “증원은 점진적이고 제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급심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제기됐다. 김 전 대법관은 “사법부라는 배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거대한 암초를 들이받고 좌초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일부 법관의 이해할 수 없는 내란 재판 진행과 영장 기각 등 내란 극복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은 행태로 말미암아, 배의 바닥에 폭탄으로 구멍을 내 침몰을 독촉하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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