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지하수 대장균 오염…발암물질도 검출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2분


4월 울산의 한 정신질환자 보호시설에서는 원생 29명이 설사 발열 증세로 집단 발병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날씨도 덥지 않은데 벌써 식중독이 터진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역학 조사반은 이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지하수에 분뇨가 흘러 들어가 지하수가 대장균에 오염된 사실을 밝혀냈다.

2월 경기 용인시에서는 지하수를 끌어다 만든 간이급수시설을 상수도로 사용해 온 마을 주민 17가구, 주민 32명이 세균성 이질에 걸렸다.

지하수의 무분별한 개발과 지하수 사용 주민들의 식중독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하수의 심각한 오염과 황폐화에는 정부의 무책임한 관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9일 관계 당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감사원은 직원 34명을 투입, 5월 한달 동안 건설교통 환경 농림부 및 광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하수 관리에 대한 종합 감사를 벌인 뒤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서 정부의 지하수 개발 및 관리 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수 이용량은 전체 수자원의 11.3%나 되지만 지하수 개발 및 관리 예산(99년 기준)은 건교부 45억8000만원, 환경부 5800만원 등 46억3800만원으로 지표수 예산의 0.3%에 불과했다.

배우근 지하수토양환경학회장(한양대 교수)은 “국민 여론에 밀려 백지화된 영월댐(동강댐) 건설에 9390억원을 투입하려 했던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면서 “건교부는 댐 건설을 통한 수자원 확보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 결과 건교부에서는 사무관 1명, 주사 1명만이 다른 업무와 함께 사용량이 날로 늘고 있는 지하수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현행 지하수법은 지하수를 개인 소유로 인정하는데다 지하수 개발 이용을 위한 허가 신고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잡아 전체 관정 시설의 81.6%가 관리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지하수가 오염되는 까닭은 200만공(정부는 최대 30만공으로 추정)에 이르는 폐공이 그대로 방치돼 이 폐공을 통해 각종 오염 물질이 땅 속으로 쓸려 들어가기 때문. 토양 오염에 따른 지하수 오염도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 고양시에서는 한 연립주택 주민들이 10년째 먹던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이 먹는물 수질기준(0.03㎎/ℓ)의 24배인 0.726㎎/ℓ나 검출되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의 경우 지난해부터 여러 집의 우물물에서 악취가 나고 물의 색깔이 뿌옇게 나타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 인근 쓰레기 매립장의 침출수가 흘러내려 물이 오염됐다”며 쓰레기 매립장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지하수 수질 검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환경부도 업무에 소홀했기는 마찬가지. 지난해까지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기존 샘물 개발업체 중 35개 업체가 평가서조차 제출하지 않았으며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경우 하루 평균 3000t의 지하수를 사용하는데도 77년 첫 개발 이후 지하수 평가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하수 보존량은 1조5488억t(암반 지하수 1만2856t)으로 연간 가용량은 132억t으로 추정된다. 당초 건교부는 2011년 지하수 이용량을 29억t으로 예상했으나 이미 초과했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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