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집 미수록 詩로 본 「미당 변천사」

  • 입력 1997년 2월 10일 20시 07분


[鄭恩玲 기자] 한국시단의 큰 산맥인 미당 서정주씨(82)가 60여년의 창작활동을 통해 남긴 시집은 「화사집」(41년)이래 14권. 그러나 시집속에 미당이 쓴 모든 시가 수록된 것은 아니다. 채 간추리지 못한 미수록시도 적지 않은 것. 최근 발표된 최현식씨(연세대 박사과정)의 「45∼55년까지의 서정주의 시집 미수록시 연구」는 미수록시들을 통해 미당의 시세계 변천을 밝힌 논문으로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내주 발간되는 「한국문학평론」창간호에 실릴 예정이다. 연구자 최씨가 45∼55년사이 미당의 작품중 시집에 미수록된 시로 가려낸 것은 「밤」(46년작, 「개벽」복간호 게재) 등 총 15편. 동아일보 월간「현대문학」 창간호 등 주로 일간지와 문예지등에 발표했던 시들이다. 연구자 최씨는 『해방 이후 10년동안 미당의 시세계를 규정짓는 세계관인 「영원성」의 철학이 정립됐다』며 『이번에 소개되는 미수록시들은 미당의 시세계가 그 10년동안 어떻게 변화됐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이후 발표된 「춘향연작」이나 「신라초」 등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미수록시 가운데 「통곡」(46년 「해동공론」) 「춘향옥중가(3)」(47년작 「대조」)는 미당의 시 「춘향유문」(48년작)과 한줄기로 읽을 수 있으며 「곰」(48년 「새한민보」)「선덕여왕찬」(50년 「문예」)은 전래신화와 영원성을 접목한 「신라초」(60년)의 모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당은 이미 해방이전의 작품속에서 「…안해야 네 껌정손톱과 흰옷을 입은무리 조선말. 조선말. ―이저 버리자!」(39년작 「풀밭에 누어서」중)며 「조선말」로 상징되는 자신의 이전 시세계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미당은 카프(KAPF)계열의 문인들처럼 현실에 대해 더 맹렬히 투쟁하거나 혹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대신 불교의 「연기설(緣起說)」로 설명되는 「영원성으로의 회귀」에서 전환점을 찾았다. 미당이 「영원성」에 눈뜨기 까지는 죽은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접신체험을 하는가하면 전쟁중에 극심한 정신병으로 시달린 경험 등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이 최씨의 해석이다. 한편 미당은 이번 미수록시 연구에 대해 『작품 수준이 미달돼서 시집편찬 때 뺀 것이 아니라 해방과 6.25를 거치며 대부분 잃어버린 것들』이라며 『미수록시들을 재평가해 시 전집에 새로 수록할지 여부는 내가 죽은 후 후학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 春香獄中歌(3) 도령님. 그날이 바로 단오였나봅니다. 광한루 초록게와 물결친 집웅우에 혼령같은 제비가 미끄러저 나부끼든. 그날은 그저 아득하였나이다. 언덕 넘어 말방울소리 찬란히…… 그대, 내 산영혼에 도장찍어 가옵시는 기쁨이랄지 황홀이랄지 가슴이 항만하야 향그러운 어느 바다속같은 그대, 그저 아득하였나이다.〈중략〉 (출전 「대조」47년 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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