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승준]인간과 철새, 같이 사는 길 없나

  • 입력 2005년 5월 1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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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연구하는 외국인 교수에게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랬더니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표출되는 격동의 사회”로 묘사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갈등의 합리적인 조정 과정이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국민에겐 익숙한 국론 분열 사안이 된 지 오래다. 영월 동강댐 건설, 새만금 간척 사업, 핵폐기장 선정 문제 등에서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이미 경험하였다. 최근 천수만 간척지를 둘러싸고 비슷한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조류들의 서식처인 이곳을 환경부가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으로 지정하려 했다. 이에 대해 이 지역 주민들은 “철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없다면 누가 떠나야 하는가”라며 천수만 갈대숲을 불태우는 반대시위를 했다. 지자체도 개발 규제를 우려하는 주민들과 같은 반대 입장이다.

▼천수만 보전-개발 놓고 갈등▼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개발과 환경,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공존의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한다.

환경 문제에서 갈등 당사자는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째, 환경단체가 있다. 둘째, 지역 주민이다. 지역 주민들은 보상과 지역 경제 발전 극대화, 사유재산 침해 반대를 주장한다. 셋째, 환경 보전 혹은 개발에서 별 비용부담 없이 혜택을 누리는 대다수 일반 국민이다. 넷째, 정부다. 개발, 보전 정책 모두의 입안자이며 집행 당사자다. 보전과 개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고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의 피해를 등한히 할 수 없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

먼저 법안을 상정하는 정부는 ‘천수만의 철새 보호가 국민후생 수준에 얼마나 편익을 가져오는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에 따라 ‘규제의 수준’을 조정해야 국민 및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이 ‘추가되는 비용’보다 커야만 규제의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환경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는 방법들이 많이 고안되면서 새로운 규제의 시행 전에 비용-편익 분석 절차를 아예 법제화시키는 나라들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 행정령 12291호가 그 대표적 예이다.

지역 주민은 새로운 규제에 따르는 피해에 대해 보상 극대화를 요구한다. 사실 새로운 규제 정책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손실을 끼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환경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는 수혜자는 세금이나 기금 등을 통해 피해를 보상할 필요가 있다. 금전적 보상은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경제학에선 이러한 절차를 ‘피구세(Pigovian tax)’라고 한다.

경제학에서의 환경보호의 편익은 국민 개개인의 선호를 근거로 산정된다. 일반 국민이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규제로 인한 환경보호 편익은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단체는 국민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할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 접점 찾아야▼

환경 문제와 관련해 무조건적인 환경보호나 삶의 질을 도외시한 개발 모두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번 천수만 사건을 계기로 보전과 개발에 있어 ‘경제적 타당성’이라는 새로운 갈등조정 모형을 응용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총후생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곽승준 고려대 교수·환경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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