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 추는 ‘댄스’가 ‘해머’처럼 보이는 이유[광화문에서/박형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0-05-20 03:00수정 2020-05-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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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 정부 산하 코로나19 전문가회의의 부(副)대표인 오미 시게루(尾身茂) 지역의료기능추진기구 이사장은 14일 감염자 수 추정 그래프를 가리키며 “이렇게 낮은 파도에서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이 그래프는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은 후 점차 감소하는 파도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오미 이사장이 언급한 ‘춤’은 미국 온라인학습 플랫폼 ‘코스 히어로’의 토마 퓌에요 부사장이 먼저 썼다. 퓌에요 부사장은 코로나19를 통제할 방안을 설명하며 ‘망치(해머)’와 ‘춤(댄스)’을 언급했다.

당장 사용하기 좋은 수단은 중국 등이 실시한 강력한 봉쇄 정책, 즉 망치다. 사생활 통제 논란이 있지만 감염자가 눈에 띄게 줄고 의료와 방역 체계도 정비할 수 있다. ‘춤’은 사회·경제생활을 유지하면서 방역하는 것이다. 눈에 띄는 확진자 감소는 없을지 몰라도 피로감을 유발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퓌에요 부사장은 일본도 댄스 통제 모델을 선택한 국가로 꼽았다. 실제 일본의 코로나19 대책은 ‘망치’보다 ‘춤’에 가까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7일 도쿄, 오사카 등 7개 지방자치단체에 처음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강제력이 없는 정책에 언론과 사회 각계에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회의적 반응이 잇따랐다. 일본 법령상 긴급사태가 발령돼도 지자체장은 외출 자제, 휴업 등을 ‘요청’할 뿐 ‘제재’할 수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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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 지나 평가를 했더니 일본인은 총리의 요청대로 외출을 70∼80% 줄였다. 식당, 마트, 카페 등은 휴업 대상이 아닌데도 문을 닫았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담당상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력하는 일본인의 DNA”라고 뿌듯해했다.

니시무라 경제재생담당상의 발언과 다른 모습도 보인다. 자주 찾는 도쿄의 한 스시 체인점은 지난달 중순 갑자기 문을 닫았다. 사장은 “휴업 대상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겁이 나 무기한 휴업한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할 정도로 의식하는 일본 특유의 모습이다.

긴급사태 발령 후에도 도쿄 번화가 도고시긴자에 사람들이 몰리자 온라인에는 ‘살인 상점가’라는 섬뜩한 표현으로 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정부 방침대로 오후 8시까지 영업하는 주점과 음식점에도 수시로 ‘문 닫으라’는 협박문이 붙는다. 구청에는 문을 연 상업시설을 신고하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헌법학자 오모리 게이고(大森啓吾) 지바대 교수는 이를 ‘메이지헌법의 잔재’로 설명했다. 1890년 메이지헌법에서 주권은 일왕에게 있었고 국민은 복종하는 신민이었다. 권력자에 대한 절대 복종,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가 당시 일본 사회에 만연했다. 오모리 교수는 그런 모습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재연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 대상만 ‘왕’에서 ‘정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패전 후 1947년에 시행된 새 헌법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돌아갔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속에서 일본 국민들은 정부 뜻을 받들어 스스로 망치를 들고 여기저기 두드리고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은 채.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정부#코로나19#해머#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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