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변한게 없어” 위안부 할머니 절규 생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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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작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19년만에 국내 무대에
사실상 영자 1인극… 2015년 日서 공연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의 손으로 내려쓴 일본군 위안부 연극 작품이라 더 의미가 있다. 제작진은 일본 우익 인사들의 갖은 협박을 이겨내며 19년 만에 서울 공연을 성사시켰다. 문화진흥아카데미 제공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의 손으로 내려쓴 일본군 위안부 연극 작품이라 더 의미가 있다. 제작진은 일본 우익 인사들의 갖은 협박을 이겨내며 19년 만에 서울 공연을 성사시켰다. 문화진흥아카데미 제공
무대는 단출하지만, 노골적이다. 19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단박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짐작이 간다. 공중에 흰 저고리, 검은색 치마가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고, 무대 뒤편에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역사왜곡 발언을 담은 신문기사들이 패널 3개에 빼곡히 뒤덮여 있다.

이 작품은 1995년 초연된 한일 합작 연극이다. 일본연극협회장을 지낸 후지타 아사야(藤田朝也·80)와 극단 미연의 김순영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초연 이후 우익세력의 협박과 관객들의 외면으로 공연되지 못했다. 후지타 씨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을 지켜보면서 다시 이 연극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19년 만에 재공연하는 작품이지만 각본을 다시 쓸 필요가 없었다. 변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 뼈 있는 영자의 대사가 추가됐다. “그놈들 우리가 죽는 것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죽어도 죽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줘야지. 일본으로 가자.”

극중 영자는 고작 15세였다. 영자는 아버지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송 씨 아저씨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식당에 취직시켜줄게. 돈도 많이 주고, 흰 쌀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줄게.” 하지만 영자가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키에 있는 식당이 아닌 위안소였다.

연극은 타임 슬립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관객은 배우 박승태의 연기에서 15세 영자와 노인이 된 영자를 마주한다. 노인이 된 영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온 일본 잡지사 기자에게 수십 년간 숨겨 온 진실을 하나씩 풀어낸다. “지옥이었어. 매일 30∼40명을 상대했고, 심할 때는 60명도 상대했어. 오전부터 오후까진 사병, 오후부터 저녁 직전까진 하사관, 밤 9시 넘어선 장교를 상대했어.”

영자는 기자에게 일본군 대좌가 위안부 소녀들에게 ‘이것은 일본 제국 육군의 명령이다. 나라의 명령이고, 천황의 명령’이라고 세뇌시켰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일본 기자는 영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 기자의 억지에 영자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너희들은 전쟁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무엇이냐”라며 절규한다.

4인극이지만, 영자의 1인극이나 다름없다. 영자 역의 박승태의 연기력에서 상당한 내공이 느껴진다. 단순히 위안부의 고통이나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내기보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한국 공연을 마친 뒤 내년부터 일본 순회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 정미소극장. 전석 3만 원. 070-4066-240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거짓말쟁이 여자#영자#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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