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명박-이회창 악수와 대통령의 정치 步幅

  • 입력 2008년 6월 15일 22시 48분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어제 오찬을 겸해 3시간 반 동안 자리를 함께했다. 독대에만 1시간 반이 걸렸고, 회동 후에는 양쪽 대변인에게 대화 내용을 직접 구술하기도 했다. 파격적인 일이다. 대화 주제도 쇠고기 사태, 인사쇄신, 화물연대 파업, 물가인상, 양극화, 국민화합, 지역균형발전 문제 등 광범위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욕을 먹어 보니 (비판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전해지더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이런 ‘소통의 자리’를 가진 것은 대선 이후 처음이다. 이 총재가 비록 예고는 없었지만 1일과 3일 두 차례 청와대를 찾았고, 보수 정권의 위기를 걱정하는 편지까지 보냈으나 이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 간에 불신의 앙금이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 대통령의 ‘정치 보폭’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사적(私的) 경험을 토대로 국회 중심의 정치를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여의도 정치’로 규정하면서 의도적으로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다.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주변 참모들을 정치색이 옅은 인사들로 기용한 것도 그래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판단 착오였다. 대통령 자신이 곧 정치인이고, 국정 수행이야말로 중대한 정치행위다. 정치를 멀리하면 그만큼 민심과도 멀어진다. 이번에 이를 절감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4800만 국민을 일일이 다 만날 수는 없다. 민심과의 소통도 정치권과의 소통을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촛불시위와 같은 거리정치의 만연으로 위기에 빠진 대의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은 제도권 정치와 손을 잡아야 한다. 정치개혁도 대통령 자신이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가능하다.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물론이고 다른 야당 대표들과도 수시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국회 교섭단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속 좁은 일이다. 청와대가 제대로 국정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려면 의견이 다른 시민단체들과도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협량한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광폭(廣幅)의 정치를 펴야 위기 극복의 진정한 해법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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