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聖火길 걸레로 닦고 40만 인파 동원한 平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4월 29일 02시 58분



북한 당국은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맞이하기 위해 평양 도로를 아스팔트로 새로 포장하고 주민들은 새벽에 몰려나와 거리를 물걸레로 닦았다. 주체사상탑에서 김일성경기장에 이르는 20km 연도에는 40여만 명이 늘어서서 꽃다발을 흔들며 성화 봉송 행렬을 향해 환성을 질렀다. 성화 봉송 출발행사에 모인 1만 명의 북한 주민들은 인공기 오성홍기 베이징올림픽기로 구성된 깃발 세트를 흔들며 춤까지 췄다. 올림픽 역사상 전례가 없는 희대(稀代)의 성화 환영 행사가 벌어진 것이다.
류샤오밍 평양주재 중국대사는 중국 국제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총서기의 관심하에 조선인민이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에 동원됐다”고 고마워했다. 북한의 성화 환영은 주민 동원에 그치지 않았다.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성화 봉송 출발행사에 참석했다. 사실상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반면 남한 국민은 그제 담담하게 올림픽 성화를 맞았다. 중국 시위대의 난동이 아니었다면 성화 봉송은 휴일의 거리행사에 불과했을 것이다. 벌써 20년 전에 올림픽을 개최한 남한 국민의 눈이 그만큼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개최한 경험이 있기에 평양의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번 행사에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정한 관계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중국 언론은 “북한이 중국과의 우정을 증명해 보였다”며 감격했다기에 더욱 그렇다. 북한이 당당한 선진국이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행사를 했을까. 마찬가지로 중국이 북한을 진정한 우방으로 대접했다면 과잉 행사를 사전에 말렸어야 옳다.
북한이 중국에 기대하는 것이 적지 않겠지만 북한은 지금 잔치를 벌일 형편이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제정신이라면 춘궁기를 보내느라 배를 곯는 주민들을 동원하는 대신 20년 전 올림픽을 개최한 남한과의 격차를 생각하며 성화 봉송 행사를 검소하게 치렀어야 한다. 확연히 다른 서울과 평양의 풍경이야말로 세계 속 남북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성화는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베트남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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