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동용승]북한은 과연 변하고 있나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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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지금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방문한 남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분단 이래로 이렇게 많은 남한 사람이 동시에 평양 시내에 머문 것은 처음일 듯하다. 아리랑 공연장에서 남한 사람들이 앉는 자리의 옆과 앞뒤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북한 사람들이 함께 앉는다. 개성공단에서는 수천 명의 북한 근로자가 남한이 투자한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육로를 통해 금강산을 관광하고 있다. 이곳 판매대에서는 여성 판매원들이 기념품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열심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습이 오늘 이 시간, 북한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 같은 모습만으로도 북한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10월부터 배급제를 다시 강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와 함께 북한 당국은 세계식량계획(WFP)을 비롯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에 활동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심지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허용해 왔던 시장에서의 곡물 거래에도 일정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아산과의 불협화음으로 금강산 관광객의 수를 반으로 줄인다고 일방 통보하는가 하면, 개성 관광사업 추진을 위한 협의도 답보 상태에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북한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북한은 변한 것인가, 변하지 않은 것인가 혼란스럽다.

1990년대 초반 우리는 독일 통일을 접하면서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붕괴에 따른 흡수 통일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에서 중국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개혁 개방으로 연결하곤 한다. 이러한 판단 잣대를 갖고서 북한이 많이 변했다고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배급제를 다시 강화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개혁이 후퇴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북한은 우리가 기대했던 개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개혁의 후퇴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2002년 7·1조치 당시 북한은 배급제를 폐지하고 시장거래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배급제는 온존해 왔으며 상대적으로 기능을 약화시켰을 뿐이다. 최근 자체 식량 생산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기존 기능을 강화한 것일 뿐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시장경제 요소를 필요에 따라 가미하고 있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계획경제 요소를 가미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남북경협 현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필자는 “남북경협에서는 갑(甲)과 을(乙)의 처지가 바뀌었다”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비록 수치상 경협 규모는 확대되고 있지만 경협 현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 변함이 없다. 오랜 기간 남북경협의 주축을 이루어 온 위탁가공사업은 주문을 주는 남측이 ‘갑’이며, 주문을 받는 북측이 ‘을’이다. 그런데 위탁가공비를 개별 단가로 산정해 보면 보잘것없이 적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관광사업을 하거나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훨씬 수익을 많이 낸다. 일정 수준의 위탁가공비를 보장하지 못할 경우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되던 시기에 위탁가공사업에 대한 북측의 관심이 현저히 낮아졌던 사례가 있는데, 최근에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사업을 위해 투자하는 남측 기업에 대가를 요구하거나, 투자자나 관광객이 방문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들에게서 입국 대가를 받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리랑 공연은 또 어떤가. 북한의 지방 주민들이 매일 수만 명씩 평양을 방문해 아리랑 공연을 보고 평양 시내를 관광한 후 감탄하고 돌아간다. 북측은 평양을 방문하는 남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북한 주민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북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며, 북한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개념보다 훨씬 느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을 제외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정책, 대북 시각에 문제는 없는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동용승 객원논설위원·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seridys@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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