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정권의 들러리로 남아선 안 된다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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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첫 국가정보원장이던 고영구 씨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도청은 없다”는 국회 답변으로 일관했다. 2년여의 임기 중에 조직, 인사, 예산 등 광범위한 ‘국정원 개혁’을 주도했고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까지 출범시킨 그다. 고 전 원장은 ‘국내 정치 사찰부문’의 개편에도 깊숙이 손을 댔다. 한두 푼도 아닌 거액의 관련 예산 흐름을 보지 않았을 리 없다. 국회에서 답변을 요구받았던 상황 때문에라도 도청 문제를 잊고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김대중 정부 때의 도청에 관해 전혀 몰랐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는 김승규 국정원장의 보고를 7월 말쯤 받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모르쇠로 잡아떼다가 대통령 지시를 받고서야 바로 자백하는 국정원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도구가 될 소지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국정원에 도청 자백을 지시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놓고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김 신임 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국정원이 정책 동향 흐름을 파악하고 정책 조언을 하는 기능은 살려도 되지 않겠느냐”고 주문했다고 한 신문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또 “지방 토착 비리 정보는 좀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국정원을 내치(內治)에 활용하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이 2002년 3월을 도청 종료시점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짜맞추기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도·감청을 했던 부서인 국정원 과학보안국의 국장을 지내고 최근까지 국정원 간부로 일했던 모 씨는 사실상 도청으로 볼 수 있는 편법 감청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6일 본보 취재진에 증언했다. 김 원장은 이런 주장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정원의 최종 발표는 철저한 진실 밝히기가 돼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국정원이 정권의 들러리로 전락하지 않고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환골탈태의 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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