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혼자 벌어 둘이 살아야 한다면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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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걱정한다.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첫 번째는 현 정권 들어 아마추어들의 독선 때문에 경제관료 집단이 위축된 것이고 두 번째는 좌파적 정책 성향이 기업과 시장을 움츠러들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북한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정부가 200만 kW의 전기를 북한에 주겠다고 발표하기 직전,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국민이 자장면 한 그릇 안 먹으면 북한의 열악한 전기 사정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계산이 틀린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국민을 속이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잘못된 말이다. 신생아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자장면 값을 다 모은다 해도 대북 지원용 발전기를 겨우 한 달 돌리는 돈밖에 안 되는데 집권당 대표가 그걸 몰랐을까. 정부가 (줄이고 줄여서) 발표한 내용을 기준으로 해도 우리는 전력 지원을 위해 처음 설비투자에 1조7000억 원, 발전소 운영비로 매년 1조 원씩을 쏟아 넣어야 한다.

송전 첫해까지 들어갈 이들 돈 2조7000억 원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그동안 예산이 없어 엄두를 못 냈지만 우리나라 군부대 병영을 단번에 샤워시설 달린 현대식 막사로 개량하고 침대와 담요를 몽땅 다 새것으로 넣어줄 수 있는 규모(3조 원)에 가깝다. 발전소 1년 유지비 1조 원만 해도 전국에 100억 원짜리 최고급 도서관을 매년 100개씩이나 지어 국가 지식수준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는 돈이다. “자장면 한 그릇” 운운하며 슬쩍 넘어갈 가벼운 액수가 결코 아니다. “최소한 이 정도 비용이 들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목적을 위해 고통을 감내합시다”라고 정직하고 간곡하게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취할 옳은 태도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여기에도 전제는 있어야 한다. 가령 성실하게 살던 이웃이 뜻하지 않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다면 고비를 넘기게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요 보람이다. 그러나 인상 험한 이웃이 불붙은 화염병을 슬슬 흔들어 보이면서 ‘우린 굶고 있다. 앞으로 달라질 가망도 없다. 그러니 어쩔 테냐’는 식이라면 이건 얘기가 다르다. 그때 행실이 수상하던 아내가 ‘동네 평화유지를 위해 듬뿍 줍시다’라고 나서고 철모르는 애들이 ‘아빠는 꼴통 같은 선입관 버리고 그들과 같이 삽시다’라고 설쳐 댄다면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이 화염병을 버리고 생각을 고치도록 설득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순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경제체제를 개선토록 하는 것은 대북지원의 절대적인 전제여야 한다. 북한이 변화를 거부해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데도 대북지원을 계속할 때는 감상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남한) 혼자 벌어서 계속 (북한과) 둘이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면 우리 경제가 언제까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세계 모든 공산국가가 포기한, 가망 없는 경제체제를 북한이 정권 유지를 위해 계속 고집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포용해야 하는가. 엔진 꺼진 자동차를 시동 걸릴 때까지만 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밀고 갈 만큼 우리 국민이 너그러울 수 있을까.

지난번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남측 인사들이 방북했을 때의 만찬 메뉴는 곰 발바닥 요리를 포함해 그야말로 산해진미였다고 한다. 수백만 명이 굶는 한복판에서 그런 잔칫상을 차린 사람들이나, 환대에 감격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나 참으로 딱한 동포들이다. 우리 정부 인사 한 사람은 그만 이성을 잃고 분위기 돋운다고 인민군가까지 불러 젖혔다지만, 분별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노래 따위는 기쁨조에게나 맡기고 그런 기회에 북한의 변화를 타이르는 ‘우정’을 보였어야 했다.

북한은 바뀌어야 한다. 정권 유지를 위해 개방경제를 거부하고 ‘평화유지비’ 같은 이상한 수입원에만 의존하려 한다면 처참한 경제 상황은 개선될 수 없고 남쪽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달할 것이다. 정부가 대북지원을 위한 국민 설득에 앞서 북한의 핵 포기와 경제체제 변화를 먼저 약속받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유지’는 그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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