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효종]청백리를 꿈꾼다면…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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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부패방지위원회가 조사한 ‘공공기관별 청렴도 비교’가 공개되자 해당기관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금품·향응수수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기관들은 얼굴을 못 들겠다는 표정이고, 하필 이 시점에서 공개한 이유가 뭐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기관도 있었다.

한국의 공직문화가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은 매년 발표되는 투명성 지수 등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있는 실존적 체험이 바로 산증인이다. 이번 해당기관들의 반응이 부방위의 결과가 공개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 그보다는 부패 그 자체에 대하여 반성하고 자책하고 있는 태도인지 궁금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수치심 문화’가 ‘죄책감 문화’를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사실이 밖으로 공표만 되지 않으면 안도하는 분위기가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알량한 위선 문화일 뿐이다. 향응이나 금품수수행위가 있었다면, 남이 알든 모르든 그 자체로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공직자라면 잘못이 알려져 얼굴을 들고 다니기 창피하다는 체면의식보다는 잘못에 대하여 뼈를 깎으며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편 청렴한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공직기관이 갖추어야 할 최고덕목은 아닐 터이다. 공직기관이라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행정에 도입하려고 하는 시도가 생겼을까.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공직기관의 효율이나 창의, 혁신 등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총대를 메면 충분히 가능하다.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창조적 파괴’를 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개혁적 소수가 있으면, 그 공직기관은 충분히 혁신적이고 또 지혜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청렴은 다르다. 청렴은 절제와 같은 덕목으로서 공직자들 가운데 소수가 아닌 전체가 절제의 덕목을 가질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말을 상기해 보자. “용기나 지혜는 국가의 어느 한 부분에만 있어도 국가를 용기 있는 국가나 지혜로운 국가로 만들지만 절제는 그렇지 못하다. 절제는 진정으로 국가 전체에 걸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직자들이 절제의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공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인 만큼 공직자윤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당위에 공감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저 ‘울리는 꽹과리’와 달리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인가. 공직자로서는 유혹도 강하고 또 그 유혹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력도 있는데, 왜 자제를 해야 할까.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메뚜기론’이 매력적일 수 있는데….

여기서 초월적 신을 말해보자. 신과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절제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혹시 신은 죽었고, 또 하늘의 그물은 촘촘하기보다는 성기다는 주장이 나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청렴과 절제의 동기를 갖기 위해서는 ‘죽은 신’이라도 필요하고 하늘의 성긴 그물이라도 요청해야 한다. 국민을 생각하면서 절제를 실천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민원인들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받는 일은 얼마든지 국민 몰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더라도 두렵고 엄숙한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과 하늘이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직자들이여! 부디 ‘죽은 신’이라도 믿자. 신을 믿을 수 없다면, 하늘의 그물이라도 믿어보자. 그것이야말로 공직자들이 내면적으로 깨끗해져야 할 이유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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