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로비양성화 공론에 부쳐보자

  • 입력 2005년 5월 23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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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사업(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의 로비스트로 잘 알려진 조안 리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로비 양성화 관련 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로비 실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로비가 주로 의회에서 이뤄지는 반면 우리는 사람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행정부와 청와대가 로비의 주 타깃이 된다. 그러다 보니 비리가 많이 생기고 로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시지 않는 것 같다.”

로비 활동을 허용하는 내용의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한 민주당 이승희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선 로비 양성화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러나 로비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낮은 탓인지 그다지 언론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로비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로비라고 하면 뭔가 모르게 은밀하고 불법적이며, 마치 해서는 안 되는 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여긴다. 또 술과 여자, 검은돈이 연상되기도 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부분의 로비 사건이 비리와 연관돼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를 받다 보니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로비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3자를 위해 구두나 서면 등 각종 수단을 통해 접촉하는 행위를 말하고 로비스트는 그러한 행위를 해 주고 보상, 즉 대가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에는 의회의 상하원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3만5000명에 이르고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1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들 로비스트가 챙기는 돈이 연간 15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나 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알게 모르게 로비가 행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가가 전제되면 특가법상 알선수재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법이고, 사정이 그렇다 보니 ‘게임의 법칙’에 따르지 않은 채 음성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로비의 양성화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어느 쪽이 옳은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부정론자들은 로비를 양성화해도 지연, 학연 등으로 엮인 인맥과 친분을 중시하는 우리의 풍토상 음성적인 로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합법화해 줄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또 로비스트를 고용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나 이익단체와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 영향력 경쟁에서 심각한 격차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긍정론자들은 로비를 양성화하면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가 투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음성화로 인한 비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동등한 로비 기회를 보장하면 정책결정자에게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에 정책 결정의 왜곡이나 편향을 방지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집단 시위나 집회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상당히 다원화되고,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로비를 양성화할 필요가 있지만 당장 그렇게 하기가 무리라고 판단된다면 양자 간에 치열하게 다툼을 벌일 수 있도록 공론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로비의 양성화 문제가 로비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진녕 정치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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