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훈]사법부의 과거반성을 촉구한다

  • 입력 2005년 4월 1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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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은 대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8명에게 사형 판결을 확정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오전 나는 대법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졌으나 그 판결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야 대법원이 바로 그날 관련 판결문을 사법부 내부 전산망에 공개했다고 들었다. 무려 30년 만의 일이다. 이뿐 아니다. 대법원은 ‘김재규 사건’에 대해서도 10년 가까이 된 시점에야 판결문을 공개한 전력이 있다.

두 판결 모두 대법관 전원이 합의에 참석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장기간 그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선고한 전두환 군부에 대한 반란죄 판결에서 1980년의 김대중 전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죄 재판이 반란행위의 일환임을 확정했다. 불과 15년 전의 김대중 내란죄 판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상황에서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에 대한 형은 사형이었는데, 전두환에 대해 확정한 형은 무기징역이었다. 대법원은 그 이유에 대해 침묵했다.

이런 모순은 전두환 군부가 집권과정에서 저지른 사유 재산 탈취행위에 대한 반환소송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법원은 전두환 군부에 대한 반란죄 판결에서 사유 재산 탈취행위 역시 반란과정의 한 부분이었다고 확정했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에도 대법원은 재산탈취행위에 대한 구제를 거부하고 있다. 재산헌납각서를 써준 곳인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에서 풀려난 시점, 아니면 ‘5공 청문회’ 시점부터 법이 정한 기간 내에 소송을 냈어야 하는데 그 기간이 지나버렸다는 이유다.

이렇듯 우리 사법사에는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런 과정에서 왜곡된 법질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사법부를 포함한 법률가들이 음으로 양으로 기여해 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이제 사법부는 법이 지향하는 목표나 정의, 선이 무엇인지 판단할 잣대를 세우지 못한 채 법을 해석하고 운영해 왔음을 고백해야 한다.

사법부를 인권보장의 최후보루라고 하는 이유는 사법부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법부 구성원들이 권력에 굴종하게 되면 사법부는 더 이상 인권보장의 보루가 아니고 사법권은 정의실현이라는 미명 아래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억압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사법사를 되돌아볼 때 구성원들이 법과 양심에 기초해 상식에 부합하는 법해석과 논리에 따라 사법권을 행사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대법관 전원일치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가 서명날인한 사실만 인정하면 그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폐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불만을, 법원은 희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판결 이전에 법원은 수사기관이 강제로 받아낸 피고인의 진술을 법정에서의 부인진술에도 불구하고 유죄 증거로 사용해 왔다. 이런 법 해석은 국가보안법 등 사국사건에서 비롯되었고,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형사소송법 관련 조문의 법정신을 왜곡한 결과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같은 왜곡으로부터 형사소송법의 진정한 이념에로 회귀하는 즉, 판결을 통한 과거사 청산의 신호탄이라는 점이 그 본질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개혁은 허구다. 과거 반성 없는 사법개혁은 사법의 자기영역 지키기와 확장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사법부의 과거 반성을 촉구한다.

김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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