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1년 美 조지 갤럽 탄생

  • 입력 2004년 11월 17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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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은 여론조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조지 갤럽이 태어난 날이다. 1901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그는 1923년 아이오와주립대 대학원을 졸업,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여년 동안 컬럼비아대에서 매스컴 및 광고 교수로 일했다. 1932년 장모인 올라 뱁콕 밀러 여사가 아이오와 주지사에 입후보했을 때 선거조사 업무를 진행한 것이 인연이 되어 조사업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American Institute of Public Opinion(갤럽여론조사연구소)’을 창립했다. 오차개념 표본추출 등 과학적 통계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여론조사기구의 출발이었다.

83세에 스위스에서 휴가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갤럽은 조사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예상이 적중하면 당연한 일을 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틀리면 묵묵히 혼자서 얼굴을 붉히고 있어야만 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매우 고독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조사는 사회 운영에서 점점 더 큰 몫을 맡아왔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갤럽 덕분에 여론조사는 자본주의사회의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과학적 여론조사는 사회를 보는 망원경이지만 욕망과 선호가 다품목 소량체제로 바뀐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리 정밀한 기법을 들이댄다 해도 적극적 조사 참여자들의 여론만 결과에 반영되고, 참여하는 사람도 속내를 드러내는 정도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

당초 ‘박빙’이라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측을 뒤집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싱거운 승리로 막을 내린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가까운 예다. ‘여론’은 전능한 힘을 갖기 쉽다. ‘여론조사 결과가 이러니까’ ‘여론이 원하니까’라는 말 앞에서 때로 공익보다 사익이 앞선 정책결정이 내려지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가까운 역사는 힘과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이 여론이라는 이름 아래 ‘여론’을 만들고, 거기에 민중을 순치시켜 온 많은 사례를 갖고 있다.

조사 기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지만 여론조사는 궁극적으로 침묵을 계량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가면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남의 생각이 드러나는 여론조사 결과에 일단 솔깃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더욱 예측 불가능이라는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어떻든 현대의 지도자들에게는 침묵하는 여론과 말하는 여론을 함께 볼 줄 아는 눈이 더욱 필요한 시대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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