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헌법정신 벗어난 ‘시장개혁’

  • 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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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연세대 상경관에서는 헌법 전문가의 ‘경제학 강의’가 있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에서 청구인측 대리인을 맡았던 이석연(李石淵) 변호사의 ‘헌법과 시장경제’ 특강이었다.

150여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을 채운 이날 특강은 헌법의 기본 이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우리 헌법은 정치사회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 원리를 기본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이 변호사는 강조했다.

실제로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가가)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은 곳곳에서 시장원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내세우는 이른바 ‘개혁 정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는 “대기업들의 투자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부동산 정책 등은 헌법적 측면에서는 위헌(違憲)적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분배를 최우선 과제로 놓는 하향평준화식 개혁은 헌법이 채택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거스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의 정신이 공무원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돼 하위 법률과 시행령 등으로 왜곡되는 ‘재량적 황폐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의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다만 시장원리는 인정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헌법 119조 2항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시장원리라는 원칙의 예외 조항이자 보충원리”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의는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강의 내용에서는 “시장경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절박한 느낌이 묻어났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원리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언제까지 거듭 강조해야 할까.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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