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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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11)

그때 옹(雍)의 장수로서 함양을 지키던 것은 전에 진나라 장수였던 조분(趙賁)과 내사(內史·수도를 다스리는 행정관, 특별시장 격)인 보(保)였다. 둘 다 유민(流民) 가운데서 몸을 일으킨 어정뱅이가 아니라 한창 때의 진나라에서 제대로 배우고 익힌 장수들이었다. 한왕 유방이 대군을 이끌고 몰려온다는 말을 듣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의논했다.

“우리 대왕께서는 폐구성에 갇히시고 장평 장군은 호치성에서 다시 패해 북지(北地)로 달아났다 하오. 양쪽 모두 한 싸움에 지고 쫓겨 가서 숨은 터라 당분간 어디서도 우리에게 구원병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런데도 적은 대군을 한군데 모아 서쪽으로부터 성을 하나씩 우려 빼며 오고 있으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도 한군(漢軍) 사이에 외로운 섬처럼 남아 성이 떨어질 날만 기다리게 될 것이오.”

먼저 내사 보가 조분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조분의 얼굴도 밝지 못했다.

“거기다가 팽성에 계신 패왕께는 아직 기별조차 제대로 가지 못한 듯하니, 가까운 날에 서초(西楚)의 구원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되었소. 새왕(塞王)과 적왕(翟王)이 멀지 않게 계시나 위태로운 자기네 나라를 두고 여기까지 원병을 보낼지는 의문이오.”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내사 보가 한참이나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결연히 말했다.

“허나 그렇다고 싸워보지도 않고 함양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오. 원병이 오든 아니 오든 먼저 새왕과 적왕에게 구원을 빌어봅시다. 그리고 팽성의 패왕께도 빠른 파발마를 보내 이 위급을 알려야 하오. 그런 다음 군량을 긁어모으고 성벽을 고쳐 성안 군민(軍民)들과 함께 죽기로 싸운다면 오히려 살길이 있을 것이오!”

그러자 조분도 한때의 맹장답게 기운을 냈다. 내사 보의 말을 받아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면 우리에게도 아직 2만이 넘는 군사가 있소. 그 대군을 성안에 묶어놓고 적이 에워싸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둘로 나누어 변화에 응하게 하는 게 어떻겠소? 내가 절반을 이끌고 나가 적의 기세를 꺾어볼 테니 장군은 남은 군사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성을 지켜주시오. 그리하여 안팎으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어 싸우다가 정히 뜻과 같지 못하면 그때는 모두 성안으로 돌아와 함께 싸웁시다. 다행히도 패왕의 구원이 너무 늦지 않게 이르면 모두 살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성벽을 베개 삼아 죽을 뿐이오!”

“그 말씀을 들으니 절로 근심이 씻기는 듯하오. 만약 장군께서 그리 해주신다면 설령 적이 10만 대군으로 휩쓸어 온들 어떻게 우리 함양을 얻겠소? 자칫하면 갑옷 한 조각 찾지 못하고 한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오.”

내사 보가 다시 그렇게 기세를 올렸다. 조분이 제법 상세한 계책까지 밝혔다.

“나는 가려 뽑은 군사 1만명을 이끌고 성을 나가 미현(7縣) 쪽으로 가겠소. 거기서 숨어 기다리다가 불시에 적의 선두를 들이쳐 그 기세를 꺾고 괴리(槐里)쯤에서 또 한번 타격을 준 뒤에 유중(柳中)에 진채를 내리겠소. 그곳에서 위수(渭水)를 뒤로하고 성안의 장군과 호응하며 버틴다면 적이 아무리 대군이라 해도 쉽게 함양을 떨어뜨리지는 못할 것이외다.”

유중은 세류(細柳)라고도 하며 함양 서남쪽 30리 되는 곳에 위수를 등지고 있는 언덕 위의 마을이다. 함양성과 안팎으로 손발을 맞춰가며 진세를 펼쳐볼 만한 땅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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