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코드人事, 개혁피로 부추긴다

  • 입력 2003년 10월 5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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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좀 튀면 안 되나요’

14일 만에 낙마한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에세이집 제목이다. 결국 그는 튀는 행동으로 인해 장관직을 떠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좌충우돌하는 창조적 노력이 필요하며, 공직자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공직에 임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좌충우돌과 고정관념 타파도 그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 전 장관의 좌충우돌과 그 파장이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바라보는 노무현 정부의 시각과 그에 따른 고위직 인사의 결과라는 사실이 심히 걱정스럽다.

▼변화 주체세력 범위 넓혀야▼

변화와 개혁은 우리 사회 제1의 덕목이다. 시대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에 동참하지 못하면 곧 도태되고,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나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의 목표와 범주,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소수 코드집단이 변화와 개혁을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주도할 때 국민은 곧 개혁 피로감에 빠지고 만다. 코드집단 구성원들이 변화와 개혁을 파격과 좌충우돌로 오인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노 대통령은 최 전 장관의 경질을 교훈 삼아 지금까지의 인사정책을 재점검해 볼 때가 왔다.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불가 의견,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에 이은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등을 야당의 발목잡기로 규정하기에 앞서 코드 인사와 파격 인사가 남겨준 폐해를 냉정하게 저울질해야 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코드 인사가 변화와 개혁에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개혁 피로감만 증폭시키지는 않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신4당 구도하의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한 단초를 인사정책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더 넓은 마당으로 나서기 위한 것임을 인사정책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우선 몇몇 마음 맞는 사람들만 있으면 개혁과 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쿠데타나 혁명은 소수의 결단과 행동으로 가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개혁은 몇몇 사람과 소수 집단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급속히 다원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변화와 개혁의 흐름은 광범위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동참할 수 있는 개인을 널리 모집하고 집단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개혁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덧붙여 노 대통령은 인사문제에 있어서 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인사권은 대통령의 침해할 수 없는 고유권한이라는 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제하에서 삼권분립은 견제를 통한 공동책임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기에 국회 역시 고위직 인사 충원에 있어 공동책임의 한 축이다. 국무총리 또한 대통령과 함께 인사를 논의할 행위자다. 권력집중을 권력분산으로 유도하는 것이 민주화라면 인사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당 지도자들의 의견도 청취하고, 국무총리와도 허심탄회하게 의논해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열린 인사를 펼칠 시기다. 노 대통령만큼 인사에 자유로운 대통령도 없다.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정치행로에서 신세진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신그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물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국회-총리와도 인사 논의하길▼

더 이상 튀는 인사는 싫다. 한두 번 튀는 인사는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지만 몇 번 계속되면 신선함 대신 불안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튀는 공직자도 부담스럽다. 변화와 개혁의 폭을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직자, 바꿀 것이 있는 만큼 지킬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공직자, 좌충우돌하기 전에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공직자를 원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리지만 역시 동서고금의 명언이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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