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액션스쿨 "몸으로 대사를 외워라"

  • 입력 2002년 3월 14일 17시 42분


“두 달간 액션스쿨에서 굴렀더니 살이 쪽 빠졌어요.” (18㎏를 감량한 설경구)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몸 만들러’ 액션스쿨에 갔죠” (권투 선수역을 위해 근육질 몸매로 변신한 유오성)

궁금했다. 몸에 큰 ‘변화’가 있다 싶은 배우들에게서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곳, 액션스쿨. 도대체 그 곳은 어떤 곳이길래….

#그 곳에 가면 액션이 춤춘다

퍽, 퍼벅, 퍼버벅-.

오전 10시. 서울 대방동 보라매 공원 후문에 있는 서울액션스쿨. 운동장에서 운동화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두세명씩 모여 ‘싸우고’ 있었다. 맞아도 아픈 기색이 없다. 치고 받고 싸우는 격투를 연습중인 무술감독과 액션배우들이 ‘합(合)을 맞춰보는’(액션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몸으로 ‘대사’를 외우고 있는 거죠. 대사는 틀리면 다시 하면 되지만, ‘액션 대사’는 조금만 틀려도 다치니까 ‘대본’연습을 철저히 해야합니다.”

격투나 활극 액션은 보통 두명이 15차례 동작을 주고 받는 ‘15합’이 기본. 주먹을 뻗고, 피하고, 발로 차고, 때리는 동작이 흡사 이인무(二人舞)를 보는 듯 했다.

오후가 되자 김명민과 유지태가 나타났다. 유지태는 ‘내추럴 시티’의 마지막 액션 장면 때문에, 김명민은 ‘스턴트맨’ 촬영을 앞두고 매일 이곳을 찾는다. 요즘은 영화가 개봉했거나 촬영이 끝나 스타들이 뜸하다. 지난 겨울만 해도 유오성, 김석훈, 박상민, 전도연, 이혜영, 유지태가 한꺼번에 왔다.

배우들은 보통 2, 3개월 기초체력훈련과 낙법을 ‘필수과목’으로, ‘전공’(배역)에 따라 오토바이 타기, 복싱, 창검술까지 배운다. 이곳의 무술감독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우수 졸업생’은 유오성과 설경구.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도 지향한다

정두홍 무술감독(36).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이 바닥에서는 하나의 ‘신화’다. 스턴트맨으로 시작해 92년 ‘시라소니’의 무술 연출로 25세때 최연소 무술감독이 됐다. 현재 충무로의 무술 감독중 출연료와 별도로 감독료를 받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 그가 받는 무술감독료는 편당 5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들의 화려한 액션 뒤에 숨어 있던 그는 최근 ‘피도 눈물도 없이’에 이어 ‘챔피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출연하며 본격 배우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액션배우는 오랜 꿈”이라고 했다.

그가 액션 스쿨을 세운 것은 1998년.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좋은 액션배우와 스턴트맨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액션스쿨을 무료로 운영중이다. 건물 임대료 90만원을 포함해 한달에 3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유지비는 정씨와 동료 무술 감독들이 개인 수입에서 조금씩 갹출해 충당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무술 감독은 20여명, 스턴트맨은 100명 정도.

#액션은 아무나 하나

기자가 직접 영화 ‘와호장룡’의 장쯔이가 되어 보기로 했다. 장쯔이가 몸을 360도 계속 회전하면서 휘리릭 공중으로 치솟는 바로 그 장면.

구명조끼처럼 가슴, 허리, 가랑이 사이를 졸라매는 ‘에어점프’를 걸쳤다. 숨쉬기가 힘들정도로 가슴과 허리를 굵은 벨트로 꽉 조여맸다. 뒷 목덜미 부분에 와이어가 연결된 갈고리가 걸렸다. 다섯명의 장정들이 천장의 도르레를 휘감고 내려온 와이어줄 끝을 잡았다.

“팔을 쭉 뻗고 몸을 힘있게 회전시키면서 오른발을 왼발 뒷꿈치에 바짝 갖다붙이세요.”

하나, 둘, 셋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몸이 10여m위에 붕 떠 있었다.

“몸이 하나도 안 돌잖아요! 다시!”

떴다, 내렸다 반복하길 10여차례. 몸의 균형을 못잡은 탓에 회전은 커녕 말아올려졌다.

꽉 조여맨 곳들이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다보니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30분도 못하고 포기 선언.

“어휴, 도대체 장쯔이는 얼마나 연습했으면 와호장룡에서 그렇게 잘 한 걸까요?”

“장쯔이요? 당연히 대역이었죠!”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