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기자의 본성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41분


‘당신은 사람들에게 현대 기술문명사회를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당신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명징한 사람입니다. 이를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미국 C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60분’의 담당 PD가 쓴 인터뷰 요청 편지 내용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유나버머(Unabomber). ABC 방송에서 20/20를 진행했던 바버라 월터스, CNN 래리 킹 라이브의 담당 PD 등 미국 최고의 언론인들이 유나버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구애(求愛) 대열’에 나섰다.

▷유나버머가 누군가. 하버드대 출신의 문명 혐오주의자로 1978년부터 95년까지 16회에 걸쳐 우편물 폭탄테러를 감행한 인물이다. 그는 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장문의 과학기술문명 비판논문을 게재한 뒤 구속돼 종신형을 살고 있다. 언론인들은 그런 유나버머를 독점 인터뷰하기 위해서 간절한 편지를 수도 없이 보냈다. 그러나 감옥의 유나버머는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 편지들을 몽땅 모 대학에 언론연구자료로 기증해버렸다.

▷보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언론인의 속성이다. 그래서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는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라는 언론비판서에서 ‘기자들은 있을 법한 일을 모두 확실한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고 꼬집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 언론은 역사를 바로 잡는 순기능을 해왔다. 워터게이트 때의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그랬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때의 동아일보 보도가 그랬다. 세상을 바꾼 그 힘은 바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들의 집요함이었다.

▷엊그제 미국에서 퓰리처상 수상자들이 발표됐다. 그 중 눈길을 끄는 인물이 현장보도사진 부문 수상자 앨런 디아즈였다. 그는 작년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밀입국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쿠바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를 찍어 영예의 수상자가 됐다. 미 연방요원의 총부리와 겁에 질려 울부짖는 소년, 바로 그 순간의 한 컷을 잡기 위해 그는 몇날며칠 이슬에 젖으며 밤을 새웠다고 했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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