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기회원/후손에 ‘묘지강산’ 물려줘서야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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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성묘 행렬이 이어지는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묘지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장묘문화의 개선을 소리 높여 외친다.

6대 종손인 나는 지난해 흩어져 있던 6대조 이하 조상의 묘 19기를 파묘한 뒤 화장해 문중산 기슭에 조성한 야외 납골식 가족묘지에 모셨다. 가로 25cm, 세로 33cm, 깊이 50∼55cm의 대리석관에 유골을 담은 도자기를 넣고 밀봉한 뒤 관들을 피라미드 형태로 배치했다. 관 19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10여평에 불과했다. 주위에는 잔디를 깔고 꽃나무를 심었으며 가문의 역사를 새긴 비석도 세웠다.

25년 전 배를 타고 근무하던 시절, 호주의 항구도시 공원묘지를 찾게 됐다. 갖가지 꽃이 피어있는 나무 아래 작은 벽돌 모양의 석관들이 놓여 있었다. 아름다운 공원에 소풍나온 기분이었다. 호주처럼 넓은 나라에서도 화장을 하는데, 국토는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봉분식 매장제도를 고집하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여의도의 3배인 300여만평의 국토가 묘지로 바뀐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후손에게 금수강산 대신 묘지강산을 물려주게 될 것이란 말도 과장이 아니다. 나부터 새로운 장묘제도를 실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호주에서 본 공원묘지를 참고로 몇 년의 준비 끝에 실행하게 됐다.

야외 가족 납골묘지를 조성하고 나니 좋은 점이 많다. 기존의 실내 납골당은 대개 음산한 분위기지만 우리 묘지는 아담한 정원같아 즐겁게 참배할 수 있다. 벌초와 성묘도 말할 수 없이 손쉬워졌다. 예전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10군데 이상의 묘소를 벌초하기 위해 온 가족이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2, 3일간 곤욕을 치르곤 했다. 다음 세대에 가면 조상들의 묘지가 방치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떨어낼 수 있게 됐다. 1년에 10여 차례 지내던 제사도 올해부터는 1년에 한번 산소에서 합동묘제를 지내기로 했다.

장묘문화의 개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방식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므로 가정마다 취향과 형편에 맞춰 적합한 방식을 택하면 될 것이다.

기회원(목포해양대 교수·해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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