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軍 컴퓨터시스템의 '다운'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08분


군사전문가들은 현대 정보전의 시초를 걸프전으로 잡는다. 다국적군은 전쟁 개시와 동시에 이라크의 컴퓨터 지휘 통제망과 데이터의 고속도로인 광케이블망 등을 두들겨 부쉈다. 이렇게 적의 정보통신망을 마비시킨 뒤 컴퓨터 폭격을 시작했다. 보병은 그저 어질러진 자리를 설거지하러 들어갔다. 현대전에서 컴퓨터 정보 보호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작은 디스켓 한 장으로 엄청난 양의 군사기밀 카피가 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침투한 해커가 결정적인 기밀을 순식간에 빼내 갈 수도 있다.

▷미 국방부는 해커들에 의해 침입 당하는 치욕을 몇 차례 당하고 나서 해커 대응 부대를 조직하고 정보보호 연구개발사업 예산을 대폭 늘렸다. 이스라엘군은 미국 국방부와 항공우주국(NASA)의 컴퓨터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던 18세 소년 해커를 98년 특채했다. 국방부에 고용된 해커들이 컴퓨터 시스템의 방화벽(firewall) 쌓는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적국 군대의 컴퓨터 시스템에 허위 정보를 옮기거나 바이러스를 집어넣어 마비시켜 버리거나 정보를 빼내 오는 기술을 개발한다.

▷컴퓨터에 익숙한 신세대 장병들은 컴퓨터 무기로 가득 찬 한국군을 강군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작년 연평해전의 승리는 컴퓨터의 승리라고 말해진다. 충돌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모두 갑판 위로 올라오고 남한군은 모두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수동으로 기관포를 작동하는 사이에 남한 해군의 신세대 장병들은 갑판 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함포를 작동해 북한 함정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땅땅 때렸다.

▷육군 중사(27)가 군사기밀 30건을 컴퓨터 동호인 대학생에게 유출시킨 사건은 어처구니 없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대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군사기밀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고 기무사에 신고했다. 군 컴퓨터 시스템을 ‘다운’(작동불능)시켰다는 의미는 아닐 테고 인터넷을 통해 군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해 군사기밀을 ‘다운로드’(내려받기)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 복사 과정의 실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조작 능력만 뛰어나고 정보보호 의식이 약한 신세대 군인은 곤란하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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