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경색 이대로 둘 것인가

  • 입력 2000년 6월 16일 19시 01분


자금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 현대투신 사태이후 잠시 개선의 조짐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사정이 더욱 악화해 극소수 초우량기업 이외에는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거래가 거의 끊긴 상태다.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사람들은 “자금시장이 흡사 마비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자금은 경제활동에서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존재인데 신규자금의 조달이 불가능하니 당연히 기업들은 불안해하고 주가는 각종 호재에도 불구하고 연일 속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가폭락은 기업들의 직접금융조달에도 악영향을 주어 자금사정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도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제2의 경제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기업인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는 것은 정부가 산발적으로 내놓는 대책이 시장에서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기본적으로 정책당국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과연 작금의 금융시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은행과 투신권의 부실에서 기인했지만 부실정리에 소요되는 자금의 규모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채권시가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이 제2금융권의 이기주의라며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도 혹 정부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에 대해 묻고 싶은 것들이다.

이헌재재정경제부장관은 어제 오후 은행에 대해 단기적으로 신탁상품을 허용하고 10조원 규모의 채권펀드를 조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해줄지는 의문이다. 시장의 요구가 옳건 그르건 간에 또 논리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정부의 대책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형평성 문제를 비롯한 각종 부작용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가 선택의 문제이고 어느 쪽을 택해도 어차피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면 파장이 덜 한 쪽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이 목전의 과제로 떠올랐다. 남북경협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도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은 조속히 해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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