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림/南北정상회담 이후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우리는 자주 지각변동이라는 말을 쓴다. 시작과 함께 새 밀레니엄 벽두의 세계사에 충격적 파열음을 낸 남북정상회담은 6·25전쟁 이후 최대 사건으로 기록되면서 한반도 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정상회담의 장면 장면은 먼저 우리 구래의 인식 구조를 상큼하게 전복시킨 뒤 동아시아 냉전의 최후 보루를 뒤흔들며 휴전 질서의 평화 질서로의 이행을 강제하고 있다. 남북정상의 역사적 회담을 통해 종전 이후 놓인 ‘전후 질서’(post-Korean War order)는 이제 ‘정상회담 이후 질서’(post-summit order)로 변전될 것이다.

해체 도정에 들어선 ‘전후 질서’와 새로이 태동하는 ‘정상회담 이후 질서’의 근본 차이는 무엇인가? 구질서의 핵심이 ‘적대적 상호 의존’이었다면, 신질서는 ‘협력적 상호 의존’으로 전환될 것이다.

적대적 의존이 상대와의 ‘대결’을 통해 내부의 단결과 발전을 촉진하였다면, 협력적 의존은 상대와의 ‘협력’을 통해 남북 내부와 민족 전체의 발전을 함께 추동하게 된다. 거대한 사태가 진행되는 절정에 있을 때 우리의 흥분은 종종 우리를 경악이 초래하는 두 반응, 즉 찬사와 냉소의 양분 논리에 빠지게 하여 사태에 대한 거시적 이성적 이해를 차단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지금 시점에서 개별 이해(利害)를 초월, 핵심 과제들을 차분히 성찰해야 할 것이다.

먼저 남북한은 정상회담의 합의와 성과가 실질적 화해 협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부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동안 남북한의 제도, 법률, 의식은 적대 구조에 기초한 것이었다. 북한과 남한의 많은 구체제 요소는 화해 협력의 신질서에 맞게 개혁되어야 한다. 적대에 기반한 이익의 고수 노력이 화해와 평화의 이상을 파괴해서는 안된다. 이제 일방의 특정 요소만을 개폐 개혁하라는 관성은 실효(失效)하였다.

상호 내부 개혁은 정상회담 이후의 대결의 완화를 실질화할 가장 중요한 징표가 될 것이다. 변화가 클수록 그 변화가 초래하는 두려움은 변화가 없는 상태로의 복원을 요구하도록 유혹한다. 때문에 내부 개혁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사태의 역진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를 넘을 능력은 리더십이 가져야 할 책임성과 사려의 필수 영역이다.

특히 남한은 민주사회의 특성을 반영, 내부의 의견 분출이 초래할 균열에 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이 가져올 ‘민족 전체 아이덴티티’의 복원 흐름은 현실에서 응당 대립에 기초하여 이익을 고수해 온 요소의 우려와 저항을 초래하게 된다.

‘분단국가 아이덴티티’와 ‘민족 전체 아이덴티티’가 병존할 때, 민족문제가 내부 사회로 투과되면서 적대의 완화는 일부에겐 자기 이익과 정신의 침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합의를 위한 양보 노력은 필수적이다. 타자의 수용은, 자기의 포기나 축소가 아니라 자아의 확대라는 점을 인식할 때 우리는 이해를 달리하는 존재들끼리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

끝으로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가 초래할 동아시아 질서의 급변에 대응, 사려깊은 국가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반도 질서의 재편과 질서 주도는 중국과 일본에 변화된 지역 질서에서 대(對) 한반도 이익을 극대화할 전략을 모색토록 할 것이다. 특히 남북대결 구조의 구조적 쌍생아이자 핵심기 제인 한미 관계는 신질서 태동에 조응, 좀더 적절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작 중요한 신질서 도출 이후 과정에서 탈락, 소외되어서는 안된다.

이 점에서 김대중대통령의 포용정책은 그동안 국제사회를 통해 대북 접근을 모색해 왔다면, 그 궁극적 심부 평양에 도달한 현시점에는 지금까지의 방도를 바꿔 평양을 통해 함께 국제사회를 향한 신뢰를 쌓는 노력을 보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울과 평양은 이점을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단 성공의 도정에 들어선 ‘민족 이니셔티브’의 김대중 프로세스(DJ process)는 국제 논리를 대변한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와 어떻게 공존하고 이해를 분점할 것인가 촌탁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키워 주고 또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으나 한반도화의 진행과 함께 이 신질서를 다루고 활용할 우리의 의지, 지혜, 책임의 영역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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