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폭락장 책임공방]증권사 보고서 탓인가?

  • 입력 2000년 4월 27일 19시 33분


‘26일의 폭락장에 누가 불을 지폈나.’

현대그룹 12개 상장사의 주가가 연일 하락장을 연출하면서 일부 증시전문가들이 ‘책임 논란’에 휘말렸다. 이들이 내놓은 일종의 ‘투자가이드’가 현대그룹과 주가를 비관적으로 전망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27일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을 만난 직후 기자들에게 “특정 증권사의 보고서가 파문을 확산시킨 것 아니냐”고 물었다. 비록 특정 증권사를 거명하진 않았지만 26일 오전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에 잠깐 올랐던 D증권의 내부 투자참고사항과 25일 오후 외국계 C증권사가 발표한 ‘투신 구조조정’ 보고서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됐다.

D증권의 참고사항은 “은행권이 대기업에 대한 여신한도 초과분 20조원을 2002년까지 회수하며 이 경우 현대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는 내용. 한발 더 나아가 “현대투신 정상화에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투신의 대주주인 현대전자가 감자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실었다.

C증권 보고서는 “현대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이 없을 경우 대주주인 현대증권이 증자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주가약세가 예상된다”는 내용. 다음날 개장 직후 외국계 투자자들이 대거 현대주를 팔아치웠다는 점에서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의혹을 받았98년에도 일본 노무라증권의 대우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가 대우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일부 평가가 있었지만 당시 증시는 노무라 파문을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으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대주의 약세와 두 보고서의 연관성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현대가 대우에 비해 현금흐름 등 재무구조가 훨씬 양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내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

2세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지배구조 갈등을 비롯해 △취약한 IR(기업설명활동) △현대투신 공적자금 제외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용근위원장도 이같은 정서를 감안, 이익치회장에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선과 현대투신 대주주들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두 보고서가 현대주 하락을 초래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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