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IMF 3년차 증후군'

  • 입력 2000년 4월 27일 19시 11분


느닷없는 신경제(New Economy)타령이다. ‘고성장 저물가’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최근의 거시지표동향을 보면 우리경제가 정보통신기술(IT)의 발전에 힘입어 물가상승의 압력 없이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식 신경제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장관은 지난 23일 KBS 제1TV 시사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리경제도 물가걱정 없이 상당기간 성장추세가 이어지는 한국판 신경제의 순환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불안요소 여전한데 호황 운운"

정부 경제팀장의 이같은 판단과 상황인식은 어처구니없기도 하려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큰 걱정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플레 없는 고성장은 10년째 지속돼 온데 반해 우리의 고성장은 지난해 막 시작됐을 뿐이다. 그것도 다분히 기술적 반등이다. 미국의 경우 정보통신기술과 함께 고도로 발달한 자본시장이 신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우리의 자본시장과 금융구조는 아직도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국제수지 적자반전이나 자본유출로 환율이 오르면 고성장 저물가구조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를 경고하고 나섰다. 올해 우리경제의 예상 성장률은 8.6%로 여전히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겠지만 기업 및 금융구조개혁을 올해 안에 마무리짓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물가불안이 본격화되고 경기마저 급격한 하강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KDI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총선 후 우리경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아직 뚜렷한 위기징조는 보이고 있지 않지만 우리경제를 둘러싼 잠재적 불안요인들이 현재화(顯在化)하면서 경제불안심리를 증폭시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지난 몇 달 동안은 경제현안들이 선거열풍에 가려졌다. 제2단계 구조개혁 노력마저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로 인해 경제운용방향은 크게 흐트러지고 대내적 불안요인들은 계속 쌓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이 다시 불안해진 금융시장이다. 대우사태 등으로 재연된 금융경색과 부실채권의 누적, 서울은행 처리, 대한생명 정상화 등의 난제가 금융시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기업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뒷받침했던 저금리저물가체제가 흔들리고 무역수지 흑자기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개혁의 부작용인 재정적자 확대와 소득불균형의 심화, 제2단계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의 지연, 춘투(春鬪)로 불붙기 시작한 산업현장의 노사분규, 그리고 새롭게 부상한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투자재원 마련 등의 난제도 복병으로 잠복해 있다.

우리 경제가 비록 외형상으로는 호황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제2의 위기를 내재화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없지 않다. 최근의 무역수지 환율동향 주가수준 등 거시 경제지표의 불안정이 그렇고 우리 사회에 개혁의 ‘피로증후군’이 확산되면서 개혁의지의 이완, 이해집단의 조직적 반발과 도덕적 해이의 만연이 그같은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경제의 성장둔화, 국제금융불안의 재연 가능성도 한국경제를 연착륙 아닌 급격한 경기침체로 몰아갈 외생변수들이다.

물론 우리 경제의 앞날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내다 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다. 이제 정부는 총선과정에서 흐트러진 경제정책방향을 바로잡고 뒷전으로 밀려났던 각종 경제현안들을 하나 하나 추슬러나가야 한다. 큰 방향은 거시경제의 안정운용과 개혁의 고삐를 다잡는 일이다. 우선 안정성장을 유도하는데 정책역점이 두어져야 하며 대외경제 여건, 인플레 압력 등을 감안한 선제적 경기조절대책을 펴나가야 한다.

▼"구조개혁 열의 꺾여선 안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질 없는 구조개혁이다. 우리가 추진하는 경제개혁은 단순한 경제위기 극복차원을 넘어 지속적인 안정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것은 속도와 강도가 문제다. 여기에 정치권의 이해와 계층간 갈등, 집단이기가 끼어들어서는 남미가 겪었던 ‘IMF 3년차 증후군’이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용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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