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3년 후에는 누가?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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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라니. 이번 총선에서 막말로 ‘DJ당’ 간판을 내걸고 부산에서 나섰다가 낙선한 노무현(盧武鉉)후보에게 한 네티즌이 붙여준 별명이라는데 왜 ‘바보’라고 했는지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같은 민주당 부총재이자 경쟁자이기도 한 김근태(金槿泰)의원은 “부산 시민들이 앞으로 ‘바보 노무현’을 ‘온달 노무현’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야 두고 볼 일이고 우선은 ‘노무현의 좌절’을 제대로 읽는 일이 중요하다. 제대로 읽고 말고 할 일이 뭐 있나.‘반(反)DJ 바람’에 날아간 것이 뻔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패배를 한 정치인의 좌절로만 볼 수 없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접고 갈 일은 아니다.

지역감정이라는 블랙홀

20일 저녁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노무현의원과 필자의 화두는 ‘3김 시대가 가면 지역감정도 가는가’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역적 적대감과 대결을 부추기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3김이 가도 지역감정은 여전할 것입니다.” 그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여야(與野)가 영수회담을 갖고 상생(相生)의 정치를 약속한다지만 영남 싹쓸이로 당선된 64명의 한나라당 당선자들 등 뒤에는 반DJ의 영남 민심이 날을 세우고 있다. 호남쪽 민주당 당선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누구라도 표를 쥐고 있는 지역민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감정은 일순간에 모든 가치와 합리성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리더십은 무엇인가. 분열 대립이 아닌 통합의 정치력이다. 이 또한 새로운 의제는 아니다. 김대중(金大中)정부 또한 처음부터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하나 김대통령의 섭섭함이야 어찌됐든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드러났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지역감정이 완화되는 면도 읽을 수 있다.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은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 힘 실어주기’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충청권의 경우 ‘지는 해’ JP를 대체할 지역인물을 키우자는 ‘이인제(李仁濟)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고는 해도 많은 유권자들이 ‘우리가 핫바지냐’는 식의 ‘반사적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영남권 역시 심적 박탈감과 지역경제 위기가 맞물리면서 ‘한나라당 싹쓸이’로 치달았지만 여러 명의 민주당후보들이 두자릿수의 득표율을 보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통합의 리더십이다. 이를 위해 어제 ‘영수회담’에서 여야 총재가 약속한 대화와 협력의 정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3년 후 새로운 리더십이 창출되어야 한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3김 정치의 유용성과 불가피성은 상당부분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3김식 정치’는 가야하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물이 바뀐다고 새로운 리더십이 그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3년은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어떤 인물이냐

여권은 대통령 임기가 아직 반 이상 남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9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를 늦추자는 측이 하는 말도 후계구도를 서두르면 그만큼 대통령의 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돼 국정운영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케케묵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집권당 총재인 대통령이 차기주자들의 공개적 경쟁과 검증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에 활용해 나간다면 레임덕은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다. 되도록 늦게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막바지에 ‘낙점’하는 식으로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 경쟁을 통해 국민에게 누가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고 누가 ‘분열의 리더십’을 보일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호남을 끌어안을 수 있는 대전환의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정권을 누가(Who he is) 잡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인물(What he is)이냐가 나라의 장래를 좌우한다. 신뢰를 기초로 한 ‘도덕적 권위’는 없이 줄세우기에나 연연하는 ‘독단의 정치’로는 안된다. 여든 야든 여전히 지역감정을 등에 업은 ‘대립과 분열의 리더십’이 권력을 잡아서는 안될 일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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