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現代' 누구의 것인가

  • 입력 2000년 3월 26일 23시 13분


현대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암투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의 고려산업개발회장 전보인사로 촉발된 현대그룹 경영대권을 둘러싼 ‘후계다툼’은 정몽구(鄭夢九), 몽헌(夢憲)형제의 전면전 양상으로 번져나가면서 그룹자체가 양분되는 사태로 치닫고 있다.

현대그룹의 후계구도는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직접 나서서 수습해야 하지만 그의 결정이 오락가락해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 이같은 내분이 장기화할 경우 그룹계열사 주가는 더욱 떨어질 것이 뻔하며 그룹의 경영난까지 불러올 수도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하면서 현대그룹을 건설 전자 금융 및 서비스 자동차 중공업의 5개 전문 소그룹으로 분할, 현대의 재벌체제를 2003년까지 완전 해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영대권 인수와 금융계열사 쟁탈을 둘러싼 형제간 암투가 증폭된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각은 차갑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제고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다. 그럼에도 이번 현대의 후계다툼과 최고경영자들에 대한 인사난맥은 아직도 한국의 재벌이 오너 독단의 ‘황제경영’, 혈연중심의 ‘가족경영’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현대그룹만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의 실질적인 주인인 수십만명에 이르는 주주나 종업원이 가장 큰 피해자다. 뿐만 아니라 국가신인도에 미치는 악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의 하나다. 현대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현대그룹은 결코 한 개인이나 가문의 기업일 수 없는 국민기업이다. 그같은 현대가 겉으로는 재벌체제를 해체한다면서 실제로는 형제간 후계싸움이나 벌이고 계열사 부당지원과 편법자금운영 그리고 주가조작 등 과거의 잘못된 경영행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현대 주가가 ‘반토막’나면서 소액주주들과 노조가 함께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태는 결코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재벌개혁의 성과가 상당부분 훼손되고 한국의 기업개혁 의지도 퇴색되는 결과를 빚게 됐다. 재벌 개혁이 ‘무늬만의 개혁’이어서는 안 된다. 명실상부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체제의 확대 등을 통해 재벌 오너의 독단적 경영권 행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