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自國民 보호도 못하면서

  • 입력 2000년 2월 29일 19시 10분


작년 12월 중국에서 납치됐다 1개월여 만에 탈출한 무역업자 김모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정부가 재외국민보호를 위해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께 KBS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탈출 후 닷새만에 간신히 칭다오(靑島)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영사관측은 관할이 아니라며 김씨를 피랍 장소인 상하이(上海) 총영사관으로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동상이 걸린 몸에다 다시 납치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500㎞나 떨어진 상하이로 혼자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측은 이에 대해 김씨 스스로가 칭다오보다는 상하이를 통해 귀국하기를 원했고 그같은 희망에 따라 차량편을 마련해 주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상반된 설명을 하고 있어 진상조사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김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재외국민 보호에 안일한 외교부의 자세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작년 한해 중국에서 발생한 한국인에 대한 테러 납치 등의 사건 사고는 182건으로 중국내 전체 외국인 사건 사고의 70%를 차지했다는 통계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이 문제를 작년 11월 한중(韓中)영사국장회의에서만 한차례 거론했을 뿐 별다른 외교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중국정부가 얼마 전 탈북자 7명을 북한으로 재송환했을 때도 우리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의 소리가 많았다.

미국정부가 6·25 미군전사자의 유골을 찾기 위해 북한측을 상대로 벌이는 부단한 노력은 정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처럼 자국민 보호정신이 투철한 정부라면 국민이 어떻게 애국심을 갖지 않겠는가.

우리의 경우, 특히 외교부 법무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 유관부서들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정부 차원의 재외국민 보호대책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 실정이다. 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관련부처 파견공무원들은 일단 공관장을 통해 모든 일을 정부에 보고토록 되어 있지만 ‘기밀’을 이유로 자기들의 보고 라인만 챙긴다. 그러다보니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현지 공관이 능률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들은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챙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중에는 돈을 헤프게 쓰며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자세가 현지인들의 범죄를 충동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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