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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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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는 그처럼 다른 인생을 사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파국을 맞게 되는 한 남자의 위험한 선택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년)를 리메이크한 작품.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앤서니 밍겔라 감독은 베니스 나폴리 등 서정적 정취가 물씬한 이탈리아 도시들을 누비며 ‘리플리’를 우아한 스타일의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냈다.
가난한 청년 리플리(맷 데이먼 분)는 우연히 대부호로부터 이탈리아에서 자유분방하게 사는 아들 디키(주드 로)를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영민한 리플리는 재즈광인 디키 앞에서 재즈 음반을 떨어뜨리는 행동까지 주도면밀하게 계산하며 디키의 삶에 뛰어든다. 리플리가 자신의 재능을 “서명위조와 거짓말, 남 흉내내기”라고 설명할 때 디키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이지만, 리플리는 그처럼 뛰어난 위장력으로 디키의 삶을 모방한다. 디키에 대한 깊은 선망과 동성애적 감정을 떨치지 못하던 리플리는 자신의 감정이 거절당하자 디키를 살해한 뒤 그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맷 데이먼은 사악하지만 지적인 청년 리플리 역에 안성맞춤이다.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리플리의 열망과 그로 인한 마음의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해 리플리가 범죄를 저지를 때조차도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긴 어렵다. 맷 데이먼 뿐 아니라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주드 로와 귀족적인 이미지의 기네스 팰트로, 케이트 블랑슈 등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도 볼 만하다.
그러나 스릴러 영화로서의 재미는 약한 편. 거듭되는 반전의 묘사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고 리플리의 완전범죄가 거의 실현되는 듯한 마당에 메리디스(케이트 블랑슈)가 나타나 파국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은 우연이라 해도 너무 기가 막힌 우연.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음악이다. 음악은 때로 화면을 앞질러 가며 비극으로 치닫는 리플리의 심리를 관객에게 섬세하게 전해준다. 18세 이상 관람가. 3월4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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