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구팬을 외면하지 말라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프로야구가 심상찮다. 시즌을 앞두고 전력 다지기에 한창이어야 할 구단과 선수들이 '판이 깨져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맞서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올 시즌 파행 운영이 예상된다. 프로야구단과 선수간의 대립은 선수 400여명 중 75명이 엊그제 선수협의회를 출범시킴으로써 표면화됐고, 야구단이 협의회 가입선수를 방출시키겠다고 선언해 이제는 형세가 자못 심각하다. 구단과 선수들이 맞서고 있는 이유는 선수협의회 구성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가 현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선수협의회 구성에 실패했던 선수들이 야구단의 구단 해체 경고에 굽히지 않고 협의회를 출범시킨 배경은 권익보호와 불평등계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선수협의회는 우선 프로야구 관련 제도와 규약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계약은 프로야구위원회(KBO)가 작성한 통일계약서로 하도록 있고, 정관이나 규약도 선수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계약대리인(에이전트)을 인정치 않고, 광고나 행사 출연금 배분이 미흡하며, 한국시리즈 출전 보수 규정이 없다는 것 등이다. 선수협의회는 또 협의회가 노조는 아니라는 점과 구단의 운영 적자 평가에는 홍보효과가 배제돼 있다는 점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구단과 KBO는 선수협의회를 선수들과는 달리 본다. 예전과는 달리 협의회 출범 반대논리로 구단의 적자를 앞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협의회를 순수 친목단체로 볼 수 없다는 데는 여전히 강경하다. 협의회는 노조를 지향하고, 협의회 발표에도 그런 목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선수노조가 생긴다면 1994년 파업으로 월드시리즈도 무산됐던 '미국의 예'등 복잡한 사건이 잇따르리라고 단언한다. 물론 다른 운동 선수단에 대한 파급효과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선수들의 모임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규약상 사전협의 조항을 위반해 창립된 선수협의회에는 강력 대응하겠다는 자세이다.

선수협의회를 둘러싼 프로야구단과 선수들의 대립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다. 선수들이 단체를 만들면 구단을 해체하겠다거나, 협의회 가입선수를 야구계 퇴출을 의미하는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하겠다는 KBO의 발표는 지나치게 들린다. 인터넷 찬성 투표 등을 바탕으로 시민단체와 연계해 투쟁하겠다는 선수협의회의 대응도 무거운 느낌이다. 19살이나 먹은 한국프로야구는 이제 야구단과 선수의 것만은 아니다. 프로야구는 어린이의 꿈이고 서민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측이 조금씩 열어둔 '대화용의'의 조건에서 실마리를 풀기를 기대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