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문회, 할 건가 말 건가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04분


경제청문회를 이달 8일부터 연다는 것은 여야총재회담의 합의였다. 여야는 이 합의를 이행하지 못했고 여권은 내년 1월8일부터 청문회를 열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보름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청문회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론에 밀려 협상이 일단 재개될 모양이지만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도대체 청문회를 하겠다는 것인지, 않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최대 난관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증언문제다. 김전대통령은 청문회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측근인 한나라당 민주계 의원들에게 거듭 밝혔다고 한다. 여권 일각에서 증언의 대안으로 거론됐던 대국민 사과도 않겠다고 말했다. 환란(換亂)에 대해 이미 입장을 밝혔고 검찰에도 답변서를 제출했으니 사과나 증언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 자체에는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의 처신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환란 당시 국정의 최고책임자였다. 그렇다면 환란 전후의 상황판단, 그리고 정책결정 내용과 과정을 국민과 역사 앞에 증언할 의무를 지닌다. 더구나 국회가 요구한다면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가 어떻게 나오건 아무 것도 협조할 수 없다는 듯한 발언은 전직대통령으로서 온당하지 않다. 김전대통령은 어떤 경우든 국민과 국회의 뜻에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이 뒤늦게나마 김전대통령 증언에 반대하지 않기로 한 것은 진의가 어디에 있든 잘한 일이다. 지금 다수 국민은 김전대통령의 증언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과거의 실책을 언제까지 감쌀 것이냐의 문제는 당의 활로와도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계는 김전대통령 증언에 마냥 반대할 일만도 아니다. 무엇이 당과 김전대통령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한나라당이 청문회 특위를 여야 동수(同數)로 구성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정감사조사법과 청문회의 전례에 어긋난다. 특위 위원장을 어느 쪽에서 맡을지는 타협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특위구성은 법과 관례에 맞게 의석비율로 해야 옳다고 본다. 이유가 무엇이든 법과 관례를 깰 수는 없다.

연립여당은 여야총재회담에서 합의된 청문회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며 경제개혁의 교훈을 얻자는 것이 그 취지다. 여기에서 한 걸음이라도 벗어나 보복이나 정략의 냄새를 풍긴다면 청문회가 제대로 될 수도 없고 그 책임은 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야합의가 안 되면 청문회 계획서를 단독처리하겠다는 여당의 발상도 어불성설임을 분명히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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