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自 타결은 됐지만

  • 입력 1998년 8월 24일 07시 13분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와 협상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타결은 됐지만 정치권의 과잉개입과 법질서를 무시한 합의 등 이번 사태는 많은 문제점과 교훈을 남겼다. 타결과정에서 나타난 양상들이 앞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때 악선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현장의 노사분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간의 원만한 대화를 통해 법테두리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힘들 때 외부의 한정적 중재가 요긴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개입이 지나쳐 원칙을 무시하는 결과가 나오면 곤란하다.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정리해고 실시의 시험대에 올랐던 현대자동차의 경우 협상의 주체는 노사정(勞使政)이 아닌 노사당(勞使黨)의 모습으로 변했다.

정치인들이 개입하면서 협상이 법과 원칙의 정신에서 벗어나 정치성 강한 흥정으로 변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장의 정치인들이 유념했어야 할 일은 균형감각이다. 사태 해결에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쪽에 무원칙한 양보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합의내용이 어느 일방에 지나치게 불리한 것이라면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세계의 이목은 우리의 노사현실에 대해 실망할 것이다.

경제를 정치논리로 대응할 때의 폐해를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입법당사자들이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사법당국에 고소고발된 사안을 흥정거리로 삼았던 것은 잘못이다. 분규때의 불법행동이 매번 없던 일로 된다면 법의 존엄성과 법치주의는 빛을 잃게 된다. 정치권의 영향으로 회사가 소취하를 약속했다면 이 역시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정치적 행동이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리해고를 법제화하고도 우유부단한 이중적 자세를 보여 온 정부도 같은 이유로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어린이들을 농성장에 데려 나온 어른들의 행동도 문제다.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것이라지만 어린이들은 모든 재난으로부터 최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다. 하물며 어린이들을 유모차에까지 태워 경찰의 진압장비와 대치하고 있는 농성장에 이끌고 나온 것은 어른들의 수치다.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의 뇌리에 무법 무질서의 모습이 각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린이를 볼모로 삼는 것은 동정받지 못한다.

노사분규는 타결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과정과 방식에 의해 합의가 이뤄졌느냐도 중요하다. ‘원만한 미봉’보다는 원칙에 따른 확실한 타결만이 환란극복에는 더 이롭다. 현대자동차가 정상조업을 하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태의 해결과정이 과연 바람직했었는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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