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水災에 휩쓸린 경제

  • 입력 1998년 8월 10일 19시 27분


물난리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다시 한번 강타했다. 물길에 휩쓸려 모로 누운 벼포기와 흙탕물을 뒤집어 쓴 생산설비가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우려했던 수해의 악영향이 벌써부터 경제 각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민 모두와 정부가 단단히 각오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가장 걱정되는 부문이 물가다. 물가에 많은 영향을 주는 농산물의 출하가 줄어들고 수송 차질이 빚어지는가 하면 일부 생필품의 생산도 흔들리고 있다. 환란 이후 안정세를 보여 그나마 경제정책의 선택범위를 넓혀 주던 물가였다. 물가안정을 전제로 추진해 온 통화 확대정책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판국에 물가까지 계획치 범위를 넘어서면 환란극복은 요원해진다. 당국은 정부보유 농수축산물의 적기방출 등을 통해 물가안정에 최우선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산업생산 설비의 피해도 걱정거리다. 전국적으로 6백여군데의 크고 작은 공장이 물에 잠겨 재고와 설비가 망가진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외화확보를 위한 가장 긴요한 방편인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경제회복은 그만큼 늦어지거나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다. 당국이 수해업체에 무담보 일반대출을 실시해 설비복구에 나서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 수출업체와 생필품 제조업체부터 우선적으로 자금을 공급받아야 한다. 당국은 말로만 생색내고 창구에서는 집행이 안되는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되면 안된다. 은행에 대한 독려가 요구된다.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지표의 하향수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벼수확이 작년대비 20%가량 감소하면 당장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1조원이 넘는 수해규모도 성장률에 부정적 요인이 된다. 경기하락에 따른 추가적 실업사태도 우려된다. 계획하고 있는 재정적자 규모가 이미 17조5천억원을 넘어 한계에 달한만큼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계획도 쉽지 않게 됐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새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수해복구를 위한 응급처방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고려해 성장과 실업, 세입 세출과 통화운용의 판을 중장기적으로 다시 구상해야 한다. 나라살림이 악화되면 당연히 국민의 고통과 불만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환란 이후 진짜 어려움은 지금이 시작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불행이 겹쳐서 일어나고 있지만 이번 물난리는 환란 이후 다소 느슨해진 사회분위기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경제당국이 소신있게 대책을 추진하고 국민 모두가 인내하면서 의지를 다질 때 수해와 환란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그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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