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美 인권차관보 후보 고홍주씨 어머니 전혜성씨

  • 입력 1998년 6월 14일 19시 40분


이달초 미국 국무부 인권차관보로 한국계인 고홍주(高洪株·44·미국명 해럴드 고) 예일대 법대교수가 지명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한국인들을 기쁘게 했다. 아울러 고교수의 집안이 미국사회에서도 존경을 받는 명문가라는 사실도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고교수보다 더 유명한 인물은 그의 어머니 전혜성(全彗星·69)씨. 미 교육부도 88년 고교수 집안을 ‘연구대상 가정’으로 선정해 장한 어머니인 전씨에게 학술회의에서 성공교육사례를 발표하게 하는 등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씨는 13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자녀 6남매를 하나같이 미국 최고의 엘리트로 키워낸 ‘비결’을 전해주었다. 어떻게 자녀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웠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씨는 “부모가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서 자녀에게 공부하라고만 하는데 자녀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저의 경우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함으로써 미국사회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씨는 자녀를 키우면서도 보스턴대에서 사회학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자로서 또 자원봉사자로서 미국에서 한국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한평생을 바쳐왔다. 56년 남편(고광림·高光林·89년 작고)과 함께 한국학연구소를 만들었던 그는 지금도 동암(東巖)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한인 자녀들에게 한국의 얼을 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는 것이 박사님의 자녀교육철학 아닌가요.

“어머니로부터 ‘재주가 덕을 앞서서는 안된다(才勝德)’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항상 그 가르침을 강조했습니다. 공부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뜻이죠. 이 말을 새기면 공부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홍주나 경은(차녀)이는 예일대에서 법학도에게 꼭 이 말을 가르칩니다. 3대째 내려오는 좌우명이 미국인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어요.”

96년 우석출판사에서 출판된 전씨의 자서전에 따르면 남편 고씨도 지하실에 책상 8개를 붙여 놓고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할 정도로 자녀교육이 남달랐다. 전가족이 아침식사만은 함께 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는데 고씨의 직장이 멀어 오전 2시반에 아침을 먹어야 할 때도 온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다는 일화도 들어있다.

전씨 집안의 학력은 화려하다. 작고한 고씨는 하버드대 법대에서 법학, 러커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의대 교수인 장남 경주씨는 지난해 10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매사추세츠주정부의 보건장관으로 임명됐다. 차녀 경은씨는 유색인종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예일대법대석좌교수로 임명돼 역시 예일대 석좌교수인 홍주씨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차남 동주씨는 MIT의대교수. 그는 인간두뇌세포의 기능을 신경지도로 만드는 데 성공한 미국 마취학계의 권위자. 장녀 경신씨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중앙대 화학과교수로 재직중이며 막내아들 정주씨는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전공을 미술로 바꾸었다. 부모와 자녀들이 미 명문대에서 얻은 박사학위만 12개.

―미국사회에서 가족 전체가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텐데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별에 대한 반감보다는 우리가 동양인으로서 미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차별을 이겨나가자고 아이들에게 말해왔습니다. 미국문명의 수혜자가 아니라 동양문화의 장점을 도입해 미국을 동서양의 문화가 합쳐지는 역동성있는 사회로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강조했지요.”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에서 24년간 연구부장으로 일하시면서 그같은 신념을 실천하신건가요.

“61년 비교문화연구를 시작할 때 한국문화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세계속의 한국,동양속의 한국으로 비교하면 훨씬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접근한 겁니다”.

전씨는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기금을 받아 한국 중국 베트남 일본 등 4개국의 형법 사례를 분석한 동양법 비교연구를 3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는 “18세기 조선 형법을 연구하면 할수록 한국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넉넉히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홍주씨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변론을 해주고 약소국가를 위해 인권운동을 벌여 유력한 국무부 인권차관보 후보가 된 것이나 장남 경주씨가 암예방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이퇴계(李退溪)선생의 “알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다”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고하신 고박사가 망명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망명했으면 한국 국적을 포기했어야죠. 고박사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국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70, 80년대 동구권에서 국제회의가 많아 할 수 없이 미국 시민권을 받았던 나와 아이들과는 달리 고박사는 집안에서 유일한 한국국적 보유자였어요.”

전씨는 남편이 주미공사로 임명되기 전 미국의 대학교수로 일했기 때문에 쿠데타가 나자 대학강단으로 돌아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은퇴하실 연세가 되신 것 같은데….

“은퇴라뇨. 계속 정진해야죠. 8월부터는 일본 교토(京都)대 교환교수로 가서 동양법 비교연구를 7개월 동안 계속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전씨가 디킨스대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지 50년이 되는 해. 6남매는 내년 어머니 전씨의 70세 생일에 맞춰 이민 50년을 기념할 계획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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