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가는 폭로전 정치 망친다

  • 입력 1997년 1월 31일 20시 09분


국회를 빨리 열어 한보의혹을 파헤치라는 국민염원은 외면한 채 여야는 뒷전에서 무책임한 저질 폭로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검증되지 않은 시중의 소문을 모아 발표하고 무차별적으로 상대를 물고 뜯는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고 있으니 정말 역겹다. 우리 정치판과 정치인들이 상식이하란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지금 한보사태를 둘러싼 여야 폭로전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며칠새 여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폭로내용들은 한마디로 골목싸움 수준에도 못미친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모당의 모씨가 한보와 가까운 사이』라는 등 마녀사냥식 발표는 예사이고 누가 봐도 분명한 협박조차 서슴지 않는다. 진상을 밝히기보다 상대방에 책임을 덮어씌우며 꼭 흠집을 내겠다는 것인지 31일까지 치고 받기를 거듭했다. 이러고도 공당(公黨)으로서의 책임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무차별 폭로전의 발단만 해도 그렇다.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가 『한보 특혜대출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으므로 책임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통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일본을 방문중이던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현지에서 『한국엔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맞받아쳤고 이것이 결국 여야 감정격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이후 신한국당의 金哲(김철), 국민회의 鄭東泳(정동영)대변인은 거의 이성을 잃은 듯 상대당에 대한 무차별 폭로전을 벌였다. 「대통령의 책임론」 「조사론」이나 「대통령병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지도자의 한마디에 여야가 벌집 쑤신 듯 들고일어나는 이런 작태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 한보사건 초기 야당들이 김대통령의 아들 賢哲(현철)씨를 지칭한 「젊은 부통령」이나 「민주계 4인방」을 거론했을 때만해도 여당은 맞대응을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검증되지 않은 설(說)을 공식발표하면서 『의혹을 받는 야당인사의 구체적 이름과 혐의는 모르며 첩보차원』이란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 야당은 그렇다하더라도 국정을 맡은 여당까지 이러니 참으로 한심하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처음 여권(與圈)인사의 한보 연루설을 주장했을 때나 지금이나 아직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거론된 당사자들이 사법적대응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도 흘린 말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증거가 있으면 검찰에 고발하든지 아니면 국정조사에서 밝혀야지 무책임하게 설만 퍼뜨리고 있으니 사건을 대선(大選)전략차원에서 접근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 아닌가. 여야는 당장 무책임한 폭로전을 그만두고 국회를 여는데 힘을 쏟아야 옳다. 국회 문은 닫아두고 누구에게도 득(得)될 게 없는 폭로전만 거듭하면 정치 자체를 망치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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