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새들도 세상을 떠나는구나

  • 입력 1997년 1월 17일 20시 19분


▼해마다 12월 들어서면서부터 주남(注南)저수지는 장관을 이룬다. 드넓은 호수가 온통 철새들로 뒤덮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철새들의 합창이 대자연의 교향곡을 연상케 한다. 특히 석양녘 붉게 물든 하늘을 떼지어 나는 철새들의 군무(群舞)는 길을 멀다 하지 않고 달려온 탐조객(探鳥客)들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우리나라 최대 겨울철새 도래지인 그 새들의 낙원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 ▼행정구역상으로 경남 창원시 동읍. 낙동강 지류가 흐르는 동쪽의 넓은 들과 북서쪽을 병풍처럼 둘러 찬바람을 막아주는 야트막한 산들, 저수지는 수심이 얕고 개펄과 수초가 많아 철새 서식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이 1백80만평 크기의 주남저수지에는 매년 10월 중순부터 북쪽 시베리아지방에서 새들이 날아와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보낸다. 기러기 재두루미 고니 청둥오리 가창오리 등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희귀조류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수지 주변에 공장과 대형축사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수질이 오염되고 생태환경이 바뀌어 해마다 철새가 줄어들고 있다. 한때 70여종 20만마리 이상 날아오던 철새가 요즘은 30여종 5만여마리로 줄었다는 조사도 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새떼로 인한 농작물 피해에 시달려오던 농민들이 저수지 갈대밭에 실화(失火)인척 불을 질러 새들을 쫓아버렸다 ▼새를 둘러싼 이 지역 농민과 환경단체의 갈등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농민들은 폭음기를 설치해 새들을 쫓고 환경단체는 이 일대를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당국의 대응은 방관과 무관심이었다. 그 참담한 결과가 방화였다. 이제라도 단안을 내려야 한다. 관광객과 탐조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아서 저수지를 관리하고 농민피해를 보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새들이 떠난 삭막한 세상은 상상만 해도 너무 쓸쓸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