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어시스트]우승하고도 물러나는 감독이라는 자리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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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이영주(41)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감독으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하나 왔다. ‘일신상의 이유로 감독직을 더는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는 경우는 숱하게 봤어도 이 감독은 지난 시즌 신한은행의 통합 챔피언 등극을 이룬 주인공이 아닌가.

그런데도 최근 거취를 둘러싼 루머에 시달렸던 그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날 오후 이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힘들어서 좀 쉬어야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진 사퇴의 이유로 건강 악화를 들었다.

이 감독은 “요즘 병원에서 당장 쉬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을 만큼 몸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85kg이었던 체중이 몇 주 사이에 75kg까지 빠졌다. 위장병과 탈모도 심하다. 최근에는 30, 40대의 지인 두 명이 잇따라 세상을 뜨는 아픔도 겪었다.

그런데도 비시즌 동안 연일 음주에 줄담배를 피웠다. 주변 관리와 재계약을 둘러싼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시즌이 끝난 뒤 트레이너 A 씨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구단과 마찰이 있었다. 월권행위로 팀 내에서 문제를 빚은 A 씨는 학연과 구단 고위층과의 인맥을 동원해 이 감독을 압박하기도 했다.

5월 말로 계약기간이 끝난 이 감독은 통합 우승에 따른 어느 정도 보상을 기대했던 게 사실. ‘프로=돈’이라는 등식을 감안하면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해 1억6000만 원에서 1000만 원 오른 1억7000만 원(옵션 제외)을 제시받았다. 오히려 지난 시즌 준우승한 삼성생명 정덕화 감독이 1억8000만 원에 사인하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이 감독이 프로무대에서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은 현대 코치였던 2002년 여름이었다. 당시 박종천 감독이 현대를 우승으로 이끈 뒤 프런트와 보너스 배분을 둘러싼 갈등 끝에 물러나면서 감독 대행에 올랐다.

정상에서 감독이 돼 정상에서 물러난 이영주 감독. 지도자는 참 묘한 자리인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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