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로 손자 잃은 할머니…아들 “母 죄 없어”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3월 20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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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6일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추락 사망사고. 2023.2.28. 강릉소방서 제공
지난해 12월 6일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추락 사망사고. 2023.2.28. 강릉소방서 제공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은 60대 할머니가 20일 처음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고 차량 운전자였던 A 씨(68)는 이날 오전 아들 이모 씨와 민사소송 대리인인 하종선 법률사무소 나루 변호사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강릉경찰서를 찾았다. 사고 이후 세 달여 만이다.

경찰 조사에 앞서 하 변호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소프트웨어 결함은 분석하지 않고 하드웨어만 검사하는 등 부실 조사로 할머니에게 누명을 씌우고, 자동차 제조사에는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급발진 사고는 차량에서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의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데, 국과수에서는 이를 전혀 분석하지 않고 사고기록장치(EDR)만 분석했다”며 “소프트웨어를 분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 변호사는 또 “사고 5초 전 차량 속도가 110㎞/h인 상황에서 RPM(분당 회전수)이 5500까지 올랐다”며 “가속페달을 밟아 RPM이 5500까지 올랐다면 속도가 140㎞/h 이상 나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상적인 급가속과 급발진의 엔진 소리가 다르다는 자동차 학계의 논문, 미국에서 실시한 인체 공학적 분석 결과 가속페달을 잘못 밟는 페달 오조작 사례는 7000여 회 중 단 2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변호인 의견서에 포함했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이같은 근거를 제시해 국과수 조사의 모순을 지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 씨의 아들이자 숨진 아동의 아버지인 이 씨는 “어머니는 사고 이후 불면증에 시달려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인기피증도 생기는 등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머니가 다시 기억해내야 할 끔찍한 아픔과 기억, 고통의 아픔이 이번 조사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며 “경찰 조사에서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내더라도 어머니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가 기존의 사례들처럼 운전자 과실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머니는 죄가 없다는 것”이라며 “급발진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끊임없이 제조사와 싸우는 힘 없는 소비자들을 대변해 관련법이 꼭 개정됐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조사는 약 2시간 동안 이뤄졌다. A 씨는 경찰에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으며, 아들 이 씨는 전국에서 보내온 처벌불원서 7296부를 경찰 측에 제출했다.

지난해 12월 6일 오후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A 씨가 몰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배수로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모 군이 숨지고, A 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A 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이 씨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지난달 23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신청했다. 해당 청원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로 회부돼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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